‘베 야드 라마’

이성훈 목사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준 뒤 얼마 되지 않아서  병거 육백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고 지휘관들을 거느려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라 추격했습니다. 이 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바로가 충동 장애자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가 이토록 변덕스러운 행동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답변입니다.

성경은 항상 친절하게 표지판을 세워서 우리가 어느 곳에 있으며, 또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하는가 하는 것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인을 향한 10가지 재앙을 일으키신 후, 애굽인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을 허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인의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 자손을 쫓아서 추격을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과 결코 무관치 않습니다.(출 14: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담대히’ 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담대히‘라고 하는 말은 원어의 ‘베 야다 라마’라는 말을 의역한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은 본래 ‘손으로’(‘베야드’)라는 말과 ‘높은’(‘라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국어성경에서 ‘담대히’라고 하는 번역된 ‘베야드 라마’라고 하는 말은 ‘손을 높이 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KJV에서는 ‘with a high hand’라고 직역했고, 국어 개역개정에서는 ‘담대히’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한마디로 번역하기에는 적절한 말이 없으나, 풀이한다면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 찬양하는 광경을 연상하게끔 해 주는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부리고 있었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신이 나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 속에서 애굽인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변하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백성의 ‘베야드 라마’와 오버랩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일’이라고 하는 것은 36절에서 그가 겪었던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겪었던 일이란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난과 역경이 심하여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애굽 군대가 독을 품고 쫓아오는 것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넉넉하게 이기시게 할 뿐 아니라 끝내는 ‘베야드 라마’ 즉 적군 앞에서 환호성을 치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전극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환란 중에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곤고함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어려움과 고난만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주님만을 바라보실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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