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들과 산에는 넉넉하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하다. 구슬땀을 흘려 가꿔온 결실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고, 결실을 나누는 기쁨도 맛보는 계절이다.

온 세상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슴마저 따뜻하다. 교회적으로도 4대 절기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이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교회들은 저마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수확의 결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절을 준비한다.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은혜롭고 경건하게 준비하는 올해 감사절은 도식적인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감사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체험했듯이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는 감사절이 말 그대로 마을 전체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먹을 것을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의미를 살렸다.

딱히 교회에 나오라고 강압적으로 하지 않아도, 이날만 되면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교회의 문턱을 넘었다. 직접적인 전도가 아닌 간접적인 전도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나눔과 섬김으로 성서의 경제정의를 실천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살기 좋아지면서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는 사라진듯하다. 물론 농촌이나 산촌, 어촌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마을 축제로 치러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회만의 축제로 끝난다. 워낙 교회의 문턱이 높아(?) 소외된 지역 주민들은 교회의 문을 두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지역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친구였던 교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교회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더 이상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일부교회는 4대 절기는 망각해버리고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하나의 절기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성도들에게 추수감사절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고, 그저 감사 헌금을 많이 낼수록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받는다는 식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결국 성도들은 감사 헌금 최대치를 뽑아내기에 이른다. 분명한 것은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헌금을 많이 내는 절기로만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수확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의 의미는 살리되, 반드시 나눔과 섬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빛을 발한다. 따라서 올 해 추수감사절만큼은 올곧게 하나님께 드리고, 동시에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는 기쁨이 있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권좌에 앉아 재물을 가득 움켜쥐고 있으면 흔히들 말하는 한국교회의 생태계는 50년도 아닌 30년, 혹은 10년 후 멈춰버릴지 모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때 무소불위를 자랑했으나 무너진 중세 유럽교회들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휘황찬란한 예배당은 술집이나, 온갖 유흥업소들로 변해버리고, 어둠을 밝히는 십자가탑의 위용은 사라지고 대신에 화려한 내온사인만이 어둠을 밝힐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이 땅의 가장 낮은 자의 심경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웃들을 위해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하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었듯이, 소외된 이웃들의 가렵고 아픈 부분을 닦아주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이번 감사절에는 되찾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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