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웅림 장로
어느덧 추수의 계절입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감사를 말 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하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의 열매’
신앙이 약화되면 불안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부터 우러나옵니다. 오늘날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이보다, 원망과 불평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이 악화 되어서 그렇습니다. 신앙과 영적 풍성함을 간직하고 살아갈 때 그 마음이 소망이 있고 감사함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한 시인은 말하기를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 풍성한 축복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감사는 ‘축복받은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그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심이 있어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표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서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대화하다 보면 감사나 만족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대개 만족함과 행복감이 없고, 늘 부족함과 불만, 갈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인간의 행복이나 만족함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하늘이 주는 축복입니다.

‘더 큰 감사를 불러들이는 마음’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감사하는 곳에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진정한 감사는 첫째는 ‘과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과거를 어떻게 생각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억울하고 서운했던 일, 배은망덕 했던 사람을 생각하면 과거에 매여 살게 됩니다. 미국인들은 조상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난당했던 지난 세월의 아픔을 잊지 않고, 오늘날에도 추수감사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냅니다. 조상들이 겪었던 기막힌 고난을 기억하고 현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지난 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는 축복의 마음입니다.

둘째는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국의 시인 밀턴은 말년에 눈이 보이지 않았고, 발명가 에디슨은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밀턴에게는 서사시 ‘실낙원’으로 에디슨에게는 ‘발명왕’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셋째는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지난날 가난했고, 무지했고 초라한 생활을 했지만 지금 내 뜻과는 상관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과거에서 계속 발전하여 왔듯이 우리의 미래도 훨씬 더 좋은 길로 발전하면서 살 수 있다는 신앙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더 큰 감사가 찾아옵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 앞에 놓인 즐거움, 꿈, 소망, 그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힘이 있고, 감사가 넘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삶으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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