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보다가 문득1

▲ 이성훈 목사
아이들과 같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문득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을 만든 사람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 그들의 비상한 머리와 능력이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인터넷을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인터넷을 어떻게 생각해 내었으며 그리고 이것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인터넷이라고 하는 기막힌 생각을 했을까요? 어디 이 뿐입니까! 겨우 쇳붙이에 불과한 것들을 사용하여 바다에 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여행은 물론이요, 엄청난 양의 물건을 싣고도 가라앉지는 않습니다. 또 그 쇠붙이를 사용하여 하늘을 날게 하여 먼 거리도 짧은 시간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과는 견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아름다운 생명체와 그 생명체들이 서로 조화하며 존재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고 또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계절을 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일까 하는 탄복이 절로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을 보면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참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출 2장 25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우리 국어성경에서는 ‘기억하셨더라’고 번역하였습니다만, 본래 원문에는 이 말이 ‘기억하셨더라’에 해당하는 ‘자카르’가 아닌 ‘야다’ (‘알다’)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셨다’고 번역하여도 그리 큰 신학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원문 본래의 의미인 “하나님이 그들을 아셨습니다” 라고 직역을 하면 개역개정의 ‘기억하셨더라’하는 번역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셨다’라고 한 번역에는 훨씬 더 많은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시고, 또 하나님이 그들의 아셨다고 하셨는데 무엇을 아셨단 말씀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형편’과 ‘사정’을 아셨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편’과 ‘사정’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동으로 인하여 심한 고통이 더해져 탄식하며 부르짖은 그들의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이제부터 행동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외에도 우리가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매우 자세한 안내문을 곳곳에 설치해 두어서 성경을 읽는 우리가 놓치지 않고 핵심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히브리어의 반복입니다. 용어를 반복, 반복, 또 반복함으로써 성경은 강조하고 싶은 내용들을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제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강조를 위한 히브리어 구문법이 또 있습니다. ABC 세 개의 문장이 이어지는 경우 A와 B와 C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A 문장에서 C 문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B문장이 없어도 굳이 의미를 전달하는데, 이는 B라고 하는 문장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자주 쓰는 구문법입니다. 출애굽기 2장 23~25절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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