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 스토니 브룩에서 제인 도(Jane Doe)라는 이름의 한 여아가 태어났다. 도는 심한 출산장애를 겪어 몸이 온전하지를 못했다.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술을 받으면 대략 20년 쯤 고통을 당하며 살 수 있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도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채로도 2년을 보장하기 힘들다고…. 도의 부모는 의사와 의논한 끝에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도의 부모의 결정은 바른 것인가, 그릇된 것인가.

▨… 미국 시카고 소재 트리니티신학대학교를 다니던 유석경은 인턴 전도사 과정을 밟기 위해 귀국한 그 주에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아도 길어야 1년이라는 의사의 선고에 투병으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3년 후, 집으로 찾아온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 기뻐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사흘 후 숨을 거두었다. (유석경,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 암을 이기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받는데 익숙해 있는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고. 그녀의 대답은? 병의 나음, 병에서의 탈출만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시좌에만 머무른다면, 직장의 암덩이는 계속 커지고 있어도 “2천년 전에 이미 주님이 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유석경의 증언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의 삶의 길이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에 있다면, 제인 도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고 유석경은 하나님을 원망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평생을 작은 교회를 붙들고 씨름하는 목사들은 가성비(cost-effectiveness) 면에서는 영원히 억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광야로 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또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젖어 있는 현대인에게는 멍청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 짐승의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사자가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런데 “멍텅구리 당나귀는 빠져라, 토끼같은 겁쟁이도 필요없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모두 조용히 하라! 당나귀는 나팔수, 토끼는 전령으로 쓸 것이다.” 사자 사령관의 호령 앞에 모두 숙연해졌다.(라 퐁테느의 우화) 해마다 열리는 전국목회자성결콘퍼런스가 정말, 작은 교회를 붙들고 씨름하는 목회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는지, 사명감을 북돋우어 주고 있는지를 이제는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교회의 부흥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를 누군가가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당나귀도 토끼도 할 일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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