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희 장로
사위와 딸이 출석하는 창천감리교회의 창립 113주년 기념, ‘종교개혁지 성지순례와 발칸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번 성지순례를 권유 받아 선뜻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두 달 남짓 준비하면서 마음이 설렜다. 9월 16일부터 28일까지 종교개혁지 성지를 순례했는데 신앙과 인물에 관한 소감을 성결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첫 순례 일정에서 믿음의 거장,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만났다. 바르크부르크 성에 있는, 루터가 신약성경을 번역했던 방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그의 얼굴에는 깨어있는 정신이 살아있는 듯했다.

중세에는 사제들의 손에만 성경이 있었다. 무지한 성도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는 라틴어로 적힌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경을 교인들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렇게 귀하고도 소중한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따라 살리라 다짐했다.

에르푸르트 도시로 옮겨 그가 수도사 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나수도원을 둘러보았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법학을 공부하는 꿈을 가졌으나 비가 무척 쏟아지는 어느 날, 루터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친구가 갑자기 벼락에 맞아 불타 죽는 것을 목격한다.

얼마나 두렵고 놀랬을까? 그 후, 루터는 신학을 공부하여 수도사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있는 대성당에서 신부 서품을 받았다. 우리는 대성당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루터의 정신을 흠모했다.

비텐베르크대학에 이르니 감회가 깊었다. 루터가 500년 전(1517년 10월 31일), 당시 천주교의 부패상에 대해 95개조의 반박문을 이 대학 ‘성 마리엔교회’의 정문에 내걸었고, 이를 도화선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신부가 된 뒤에도 그는 ‘죄에서 자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답을 얻지 못해 괴로워한다. 고행과 수련 및 금식, 수많은 기도로써도 답을 찾지 못하자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간다. 당시 로마는 베드로 성당을 지어놓고 재정을 해결하지 못하여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다.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있는 가족을 천국으로 옮길 수 있다고 현혹하던 시대, 심지어 사제 서품까지 돈으로 살 수 있었던 시대에 항거했다. 그의 항거는 남을 쳐서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자신을 쳐서 바꾸는 개혁이었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루터하우스에서 느낀 점은 특별하다. 그는 옥탑에 있는 방에서 성경을 묵상하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는 구절에서 은총을 경험한 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루터는 교황이 인간의 죄를 사한다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지 못했다.

벌을 주고 심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를 ‘옥탑방 체험’이라 부른다. 이 체험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루터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는 찬송을 힘차게 부르며 어느 순간 루터의 사람이 되었다.

이번 순례에서 시대를 바꾸는 주연 인물 곁에는 하나님께서 조연을 붙여준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를 도와준 인물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왕, 아내 ‘폰 보라(Von Bora)’, 친구 멜란히톤(Melanchthon),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시장 등이다. 모두 루터가 죽은 줄 알았지만, 프리드리히 왕이 나서서 그를 구출하여 변장시켜 바르크부르크 성에 칩거하면서 신약성경을 번역하도록 지켜주었다.

아내 보라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위해 수도원을 탈출한 수녀이다. 다섯 자녀의 성실한 어머니요, 개신교 첫 번째 사모로서 험한 일을 마다않고 남편을 진정으로 도와준 배필이다. 루터하우스 앞마당에 서 있는 보라의 동상 곁에서 나는 마음이 짠했다.

그의 절친, 멜란히톤은 신학교수로서 가까이 살면서 루터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쳐 주었고 종교개혁운동을 열렬히 후원했으며 나중엔 루터의 신학을 이어간 사람이다.

크라나흐 시장은 약국을 경영하던 재력가요, 루터의 교리에 동조하고 성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따지고 보면 종교개혁은 루터를 시켜서 하나님이 해내신 것이다. 지금도 이 시대의 선지자 역할을 하시는 목사님이 주연이라면 장로와 권사를 비롯한 직분 맡은 이들은 조연으로서 동역해야 함을 알게 된다. 루터의 흔적을 밟으며 나는 오직 십자가 믿음을 회복하고,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본질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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