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은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다. 자신이 그린 해도가 외롭고 황량한 사막일 수도, 늑대와 승냥이가 아우성치는 정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벌겋게 달군 쇠붙이처럼 치열한 사색의 길을 걸어 결국 유신론자가 되었다. 조물주의 현현하심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진 길이었다고 선생은 고백했다.”(김태완의 인간탐험, 월간 조선 2019년 10월호)

▨… 김태완에 의하면, 이어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평생을 화제의 중심에서 살아온 분석과 통찰의 거인이다. 그 거인이 증언했다. “종교적 영역은 지성의영역이 아니라 영성의 영역”이라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말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고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맞닥뜨리는 허공을 밟고 올라가느냐 마느냐를 결단케 하는 것은 믿음밖에 없고 그 믿음을 알아야 영성의 세계가 열린다고 풀이해주었다.

▨…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사람이 “과학을 덜 알면 무신론자가 되고 더 깊이 알게 되면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고 증거하는 이어령의 고백, 이 고백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설교가 아닐까. 그렇다. 벌겋게 달군 쇠붙이처럼 치열한 사색의 길을 걸어 마침내 영성의 세계를 열어 이루어낸 설교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는 설교다. 그것은 설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 자신이 설교자이면서도 인간의 설교가 설교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던 아카이와 사카에 목사는 십자가의 사랑을 자신의 언어로 풀이할 수 없음에 절망했었다. 칼 바르트도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한 임무라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모든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성서의 말씀을 방편으로 하여 증거하게 하신다(칼 바르트)는 믿음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일주일에 최소 3회, 1년에 150여 회 이상의 설교를 감당한다.

▨… 도대체 한국교회의 목사들만큼 설교를 많이 감당해야 하는 목사를 세계 교회사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금요예배와 새벽예배, 심방예배까지 포함시키면 목사는 설교자라기보다 차라리 설교기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평생에 단 한 번도 자신을 만족시키는 설교를 해본 적이 없는 절망감을 곱씹으면서도 우리 성결교회의 설교자들은 오늘도 강단에 무릎 꿇는다. 나의 삶 자체가 종국에는 한 편의 설교다운 설교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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