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삼중적 증언이란?

홍성철 박사
예수님이 38년 된 중환자를 고쳐주셨는데, 그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요 5:9)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비난하면서 벌떼처럼 일어나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셨는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깨뜨렸다고 달려들 것이 너무나 분명한 데도 말이다. 안식일이 아닌 평일에 고쳐주셨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을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기만 하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은 의도적이었다. 율법적으로만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였다. 그 병자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환자였다. 그가 어떻게 안식일의 율례를 깨면서 도성을 벗어나 거의 1km나 되는 2,000큐빗이나 걸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38년 동안 안식일에만 그 율례를 지킨 것이 아니라, 매일 그 율례를 지킴으로 육체적으로는 매일이 안식일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진정한 안식이 있었을까?

맹공을 퍼붓는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응수하셨다.(요 5:17) 그러자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다고 하면서 그분을 죽이려고 했다.(요 5:18) 이에 삼중적인 증언을 통하여 죽일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라는 율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신 19:15)

그렇다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삼중적 증언은 무엇인가? 첫째는 그분이 일구신 역사이다. 예수님이 이루신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역사는 역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역사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역사를 일구겠는가?

두 번째 증언은 하나님 아버지이다. 먼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 때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얼마나 분명한 증언인가!

또 한 번은 변화산 위에서였다. 예수님은 요한, 베드로 및 안드레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는데,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베드로는 어떨 결에 예수님과 그들을 위하여 초막 셋을 짓자고 하였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5) 역시 분명한 증언이다.

세 번째 증언은 성경이다. 그분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이 말씀에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데, 그때까지 신약성경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9권으로 이루어진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데, 그 메시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그 성경이 증언하는 메시야를 놓쳤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그 못지않게 불행한 것은 이런 삼중적인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처럼 자랑하며 의지하는 율법의 분명한 가르침인 삼중적 증언을 무시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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