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목회와 신학」 9월호에서 미국의 콜롬비아 국제대학 총장 조지 머레이 박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를 드러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때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은 잘해”, 우리는 이 말 가운데에서 머레이가 지적한 것처럼 그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이 약하다는 것에 대한 강한 반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진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말하지만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 얼마나 현재의 삶에 적용하고 살고 있는가를 한번쯤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진리는 모든 눌린 것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면 우리의 삶에서 보여 주는 삶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억압이 아니라 자유함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 있을 때에 영과 혼과 육이 최상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떠나면 아니 그 진리를 보여 주지 못하면 진정한 평안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르고 살 때에는 우리의 삶이 진리에 반대되는 삶이었다 하더라도 그 당하는 고통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진리를 알고부터는 우리의 삶이 진리에 벗어난 행동을 한다면 그 고통이란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온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시32:3)”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가장 많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목회자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진리를 가장 많이 보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이성봉 목사님이 존귀히 여김을 받을까요? 그 분의 설교가 탁월하기도하시지만 그 말씀대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책임적 존재입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사회적으로 가장 큰 도덕성을 요구하는 위치에 있다면 그 책임의 막중함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를 말한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진리를 말했다면 그 진리를 보여 주기 위해서 많은 희생과 아픔을 감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변화는 말로 끝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때에 가능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보증수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보여 줄 때에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보여 주지 못하면 세상은 그 진리를 말하는 자를 외면하게 됩니다. 그 진리를 보여 줄 때에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어디서 생깁니까? 깨끗함(성결)입니다. 깨끗하게 사는 것,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쇠입니다.

머레이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세대든지 예수님의 삶을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물질주의자가 아니었고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했는데,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방법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직하셨으며, 우리도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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