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16~19)

원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오른손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아서 양손을 다 쓰는 사람들을 양손잡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양손잡이인데 어릴 때 오른손을 쓰는 게 처음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자기가 쓰는 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기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하지 않으면 뭔가 어색하고 틀린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행동에만 그런 게 아니고 생각하는 일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구둣가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신발을 먼저 살펴보게 마련이고, 옷가게 하는 분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먼저 살펴봅니다.

신앙에도 습관이 있습니다. 본인은 깨닫지 못해도 늘 자기가 믿는 대로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늘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은 소리 내어 기도해야 기도한 것 같고, 조용히 기도하는 분은 명상하듯이 기도해야 기도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색하다고 해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자기의 오랜 습관대로, 자기가 따라온 전통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태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의 이런 잘못된 자들을 꾸짖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이제 옛 율법 아래 매여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거짓교사들은 지금 먹고 마시는 식사법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까다로운 규정들을 가지고 많은 성도들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율법적인 모든 규정들은 다만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림자는 더 이상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이후 아무도 더 이상 이런 율법적인 규정에 얽매여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더 나가서 바울은 그들의 결정적인 잘못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량한 자신의 경험이 최고인 줄 착각하고 거기에만 매달려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넘어지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안 되는 내 지식, 내 신앙의 연륜이 아니라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머리의 통제 아래서 한 몸으로 제 기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내가 살아온 습관 때문에, 내가 살아온 가치관 때문에, 내가 믿어온 신앙의 관습들 때문에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었어도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내 습관, 내 판단 그걸 못 버려서 일이 뒤틀려버렸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나하고 다른 사람, 삶의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신앙생활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나에게는 영 어색한 사람, 그들에게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내 속에 아직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 내 생각이 그리스도보다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 것들만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 앞세우기 전에 잠깐 멈추고,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셔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편견과 오해들을 녹여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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