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사의 야사에서 전해져 오는 일화 하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우연한 기회에 교황 인노켄티우스4세(재위 1243~1254)를 알현하였다. 교황은 금은 그릇을 비롯한 교황청의 화려한 비품들을 감상하게 하면서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났군요.” 아퀴나스가 그 말을 곧 이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 인노켄티우스 4세가 굳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그냥 전해져 오는 야사의 한 부분이니 미루어 짐작하는 것 자체가 조금 웃기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면서 금은 그릇을 자랑하려 하던 인노켄티우스 4세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짤막한 야사에 담겨진 의미는 결코 작지않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 수도사적인 삶과 신학연구에 자신의 평생을 던지기로 결단한 대신학자 앞에서 금은그릇의 아름다움을 탐하려던 인노켄티우스 4세는 자신의 그런 모습에서 왈칵 솟구치는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일까. 베드로에게 없었던 것은 내게 넘쳐나는데 베드로가 간직했던 예수의 제자됨은 흔적으로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핏하게나마 확인했던 것은 아닐까.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시대가 변했다는 핑계를 부지불식간에 찾아냈다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 그러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노켄티우스 4세가 숨으려는 구멍을 자신의 전부를 던져 단숨에 막아버렸다. 당신에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려는 의지도 없고 자격도 없으니 그 이름으로 무엇을 이뤄낼 당신의 시대 또한 없다고. 그 가차없는 선언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던 시대도 지났다라는 한마디에 담겨 있다고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 나라 꼴도 교회 꼴도 많이 어지러운 탓일 게다. 우리사회, 또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과연 제대로 된 지도자임에 틀림없느냐는 질문이 우리사회와 교회 곳곳에서 들려 온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이땅의 백성이며 또 이땅의 교회 교인임을 부끄러워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야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라는데 한국사회와 교회가 인노켄티우스 4세처럼 시대를 향해서만 탓하고 핑계대려 한다면 십자가는 다시 예수님의 몫으로만 오롯이 남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만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늦었더라도 이제는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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