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6~13)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소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통의 사회는 아주 끔찍할 것입니다. 불통은 피가 통하지 않아 동맥경화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소통은 뜻이 서로 잘 통해서 오해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어떤 것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통화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어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 때문에 가족과 친구 사이에 불통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통화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내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전화통화가 잘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듣지않고 내 말만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대화가 아닌 불통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소통을 잘하여서 많은 것 중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소통은 오랜 시간 같이 자고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 말고는 거의 같이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고자 하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 사고 때문에 예수님이 원하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통이 아닌 불통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고 또 다른 복음서에서도 여러차례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소통이 되지 않아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고난과 죽음에 대해 쉽게 말씀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웃으며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말씀하셨을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도 제자들은 “누가 크냐?”로 다퉜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만 들으려 했기에 대화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주 가끔 가정에 심방오셔서 말씀하실 때 자기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집중하고 들었기에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많은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오래 같이 있었다고 해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임직을 받았다고 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소통하는 사람이 옥합을 깨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과 소통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따르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만 외치고 들어달라고 나 중심의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나 중심의 신앙이 아닌 예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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