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이어지면서 한·일 간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바닥부터 요동쳤던 적은 없었다. 더욱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경제마저 흔들리는 위기상황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가 제대로 대응해 우리 안보와 경제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지켜내야 한다.

현재의 한·일 관계는 그동안 진정한 참회와 용서 없이 지내온 탓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억압에서 벗어난 지 74년이 지났지만 36년 동안 식민지배로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일본은 진정한 참회와 사죄 없이 일관되게 지난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아베정권은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여러 나라에 고통을 안겨줬던 역사를 잊고 다시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징용의 배상에 관한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을 빌미로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도 이러한 꿈을 아직 접지 않았다는 의미다. 일본정부는 대일청구권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일본은 과거사 이야기만 나오면 한·일 양국의 미래를 말하고, 아시아태평양시대의 평화를 노래하지만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착취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가 없는 등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죄해야 하고, 피해자는 겸허히 이를 수용하고 용서해야 한다.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고, 우리도 진정으로 일본을 용서한다면 지금의 갈등은 저절로 풀릴 것이고, 한·일관계도 새롭게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방치하려는 일본의 처사는 도덕적, 인륜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사 정리를 위한 한 나라의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만을 무역 보복으로 대응했다는 점 또한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몰역사적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민간 차원에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는 것도 그동안 일본의 이런 행태와 비교할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보복적 행태가 못마땅하고,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정부와 종교계는 달라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롯한 한·일 과거사 문제는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특히 정부만큼은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사태를 수습해 나가야 한다. 자칫 감정적 대응에 치우치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국가 현실과 국제적인 문제의 엄중한 현실에서 교회의 사명과 역할도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나라를 위한 기도에 앞장서왔다. 할 수 있으면 평화, 그리고 전쟁 없이 이기는 길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의 십자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한·일교회가 민간 차원에서부터 ‘화해와 용서’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뜻있는 일본교회와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일본 국민들과 정치권이 ‘사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도와야 한다. 또 국내에 고조돼 있는 반일(反日) 감정을 극일(克日)로, 애일(愛日)로 넘어설 수 있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소명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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