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그리고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면서 ‘과연 어디까지 성장해 가야 하고, 또한 훈련시켜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하게 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까지가 정답이다. 그러나 지금도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은 점을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는 필자와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답을 찾지 못한다면, ‘계속 성장해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답이 될 만한 사례가 성경에 있다. 요한복음 21장의 내용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다시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다로 가는 우리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온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모두 목격하였는데도 다시 어부의 생활로 돌아갔을까?

십자가 사건을 거쳐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위대한 여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한번 실패한 사람은 또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상 대위임을 통해 파송을 받은 상태에서도, 주저하다가 다시 물고기를 잡는 현실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러한 고민은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한 것 같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연약함을 아셨다. 그리고 이러한 제자들을 온전한 제자로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의 말과 교훈이 아니라,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갔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자 고기가 많이 잡혔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주님’이라고 소리쳤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주님이라는 말만 듣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만큼 주님을 기다렸다는 반증일 수 있고, 반가움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아마도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고기는 잡히지 않고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예수님을 기억하며 아파했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도 세 번 씩이나! 예수님의 질문은 베드로에게 활력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주님께 내어 놓을 것이 없는 배신자와 같은 베드로가 다시 주님을 만나서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을까? 그런데 주님은 그런한 베드로에게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어!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야!’라는, 베드로도 알지 못하는 그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핵심을 만져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세 번이나 물어보셨을까? 그것은 헬라어 원어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가페’의 사랑을 물어보셨는데, 베드로는 ‘필레오’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답했으며, 그것은 주님이 알고 계신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과 답변도 마찬가지 였다. 결국, 예수님은 마지막 세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에게 ‘필레오’의 사랑은 정말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필레오’의 사랑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필레오의 사랑을 답한 베드로에게 천하보다도 귀한 양떼들을 맡기셨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끝난다. 이것이 요한복음에 나타난 제자도의 마지막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는, ‘필레오’의 사랑을 답한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불에 타 순교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필레오’가 아닌, ‘아가페’의 사랑으로 승화시켜 그의 일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쌓여져 주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로 바뀌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어져 간다면,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님께 표현하여, 주님의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이 이끄시는 데로 달려가는 길이 신앙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제자도의 마지막이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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