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장로
편도 14시간의 비행길부터 쉽지가 않다.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가는 순례길이다. 성지순례, 오랫동안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실행이 어려웠다. 나이를 계산하면서 용기를 내었다. 요르단은 아주 생소했다.
가는 족족 마을과 사람들이 우리가 어렵게 살던 그 때를 닮았다.

세계 유명 불가사의라는 페트라를 찾았다. 사위가 온통 가늠할 수 없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한 두 대의 마차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아주 오래 전 외세에 쫓겨 살던 유목민들이 만든 요람지가 있다. 관광객들이 탄 말이나 낙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흙먼지가 일었지만 비포장 자연 그대로가 좋았다.

바윗길에 갇혀 위로 탁 트인 파란 하늘을 보니 여기저기 구름이 피어있다. 가는 길 틈틈 여러 형상의 바위산에는 시커먼 큰 구멍들이 자주 보인다. 옛사람의 주거지와 무덤이다. 30여 분 걸었을까. 큰 광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핵심자리다. 이곳 건물들은 바위산을 깎아 만들었고 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은 온 사방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사막지대의 산이 작은 동산과 같이 보이는 것은 모진 세월을 견딘 흔적이다. 광장 중심에 자리 잡은 알카즈네 신전은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엄청 큰 바위산 건물이다. 권력의 힘과 인간의 무한한 능력, 땀, 울분, 눈물이 한데 버물려 만들어진 걸작 품은 천년의 겁을 몇 번 겹쳐서도 웅장하고 당당하다.

8천여 개나 되는 야외극장 좌석은 바위에 홈을 파서 만들었다. 바위 틈새로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들이 보인다. 생명의 끈질김에 끌려 카메라를 들이댄다. 사해 입구 매점 간판에서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땅에 왔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글귀를 보면서 네델란드를 떠 올린다.

기독교 성지는 이스라엘이 백미다. 무장군인들이 딱딱한 얼굴로 사방을 주시한다. 여군들도 있다. 이스라엘은 여러 종교색을 띤 민족들이 동거하면서 만들어진 나라다. 수천 년간 종교적 갈등을 잘 소화하면서 신앙의 땅을 지켜가는 지혜가 보인다. 직사각형의 돌로 건조된 무덤들이 산을 덮고 있는 곳에서 부활신앙을 염원하는 유대인의 믿음을 본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통곡의 벽을 마주하며 기도하고 울부짖고 있다. 종교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예루살렘은 신의 도시라기보다 관광지다. 이스라엘 국민소득의 90%가량이 관광수입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길 좌우에는 점포들이 줄을 이었다. 예수의 땅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모습이 별로 없는 것은 오로지 세월 때문일까. 성지가 기독교역사의 출발점이지만 세상 변화에 색을 바래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신앙인의 참 자세는 매사를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순례 길을 떠날 때 서울신대 총장을 지낸 목사님이 이런 카톡을 보냈다. “성지를 순례하고 오면 성경을 읽고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경 속의 인물과 지명을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성경읽기는 반복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확실히 보았다. 가는 곳곳 거리 이정표에는 성경에서 나오는 지명들이 그대로 씌어 있었다. 그것은 오랜 역사와 현실의 괴리로 주춤하는 나에게 믿음의 확신을 더해 주기에 충분했다. 아내와 함께 한 버킷리스트, 생애의 큰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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