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계한 고 김수한 추기경의 장례미사의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참석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천주교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하고 무거운 슬픔을 품격 있게 애도하도록 하였다. 만일, 우리 교단의 교단 총회장을 지내셨던 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난 이후 교단장으로 장례절차가 치러진다면, 교단의 위상이나 고인에 대한 예우 등을 고려하여 장례준비가 되겠지만, 세인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필자는 예배학을 전공한 관계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예배와 집회, 기도회 등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를 한 후, 바르게 실행할 것을 요청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사용한 언어의 단어에 대한 개념이 바르게 해석되지 않으면 생각의 무지에서 오는 행동의 무질서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품격과 거룩한 교회의 위상은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의 중요한 지위이며, 표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관점에서 교회의 예배와 집회는 혼용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예배는 예배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있으며, 집회는 목적에 따른 실용성으로 행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와 기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단순함으로 집회 또는 컨퍼런스의 기능적인 순서를 예배화 하는데 문제가 있다. 예배는 쇼가 아니다. 뮤지컬도 아니며, 모노드라마도 아니고, 강연회도 아니고, 토크쇼도 아니다. 컨퍼런스도 아니다. 예배는 인간이 가진 최고의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케팅 전략에 의존하고 있다. 목회자가 토크쇼 진행자처럼 행동한다면 예배는 변질되고 만다. 진정한 예배를 위하여 목회자는 올바른 표현을 하여야 한다. 정결한 언어와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기품이 있는 단어를 언어로 표현하여야 한다.  

유진 피터슨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라고 하며 설교자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삼가야 할 것을 권면하였다. “이 본문을 주의해서 들어보세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 찬송은 감동적이군요. 가사에 유의하며 불러봅시다.” “저는 이 찬송을 정말 좋아합니다. 저에게 너무나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감동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유진 피터슨은 ‘그런 말들은 교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그들의 관심을 목회자에게 쏠리게 한다. 성경 본문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그 본문 속에서 말씀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라’ 하였다.

필자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하여 설교를 송출하고 있다. 그러기에 단어 사용에 대하여 신중하고 세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모니터하면서 때로는 다른 이들의 설교를 청취하곤 한다.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나 자신을 성찰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성경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는 도구이므로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치우침이 없어야 하며, 사상이나 이념, 경험을 회중에게 주입하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세계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기독교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 형식의 다양함을 관찰 할 수도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필자가 내린 예배에 관한 결론은 다양한 형식의 예배는 이해하지만,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하며, 영광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타종교의 지도자가 선종한 후 행하여진 장례식을 보며, 우리 교회와 목회자는 너무 문화의 흐름에 동화되어 가벼워지지 않았나를 성찰하여본다. 또한 세상을 너무 가볍게만 보고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여본다. 신앙의 중심은 예배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 것인가? 필자는 예배는 공연이나 쇼가 아니고, 토크쇼도 아니며, 세미나, 컨퍼런스도 아니라고 본다. 또한 예배와 집회는 실용적으로 혼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배와 집회를 구분하여 바르게 하자. 세상이 너무 가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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