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12살 이상의 여인들은 모두 납세의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도 당연히 호적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에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에 이르는 긴 여정을 참아내며 굳이 호적을 하러 갈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호적을 위해 가야하는 이 긴 여정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가정의 가장이 가족을 대신해서 호적하러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호적을 하기 위해 힘든 길을 떠났습니다.
왜 혼자서 가도 될 곳에 임신하여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그 먼 길을 갔을까? 마리아가 처녀 잉태로 인하여 동네 사람들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을 염려한 요셉의 배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아기를 출산해야 하는 마리아의 그 아픈 심정을 요셉은 헤아렸던 것입니다. 웃으며 남편을 배웅하고, 뒤돌아 서서 그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야 할 만삭의 아내를 배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 예언의 성취, 말씀의 성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미가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만져주심이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주일날, 권사님이 치매초기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왔습니다. 신앙생활의 경험이 없는 어머니였지만, 예수님 만나기를 소망하면서 어머니를 등록시켰습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교회에서 세례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비록 어머니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해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받기를 위해 기도하다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세례예식이 있는 날, 예배시작 전에 그 어머니를 불러 예수님을 영접하시도록 교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서 은혜중에 세례예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부터 어머니가 출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걱정되었습니다. 세례받고 난 이후에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야 할 텐데, 도리어 교회가기를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당연히 저는 권사님이 이 일로 낙심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이 그 다음 주일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엄마가 세례받고서 건강이 나빠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천국갈 수 있잖아요.”

권사님의 말은 목회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저는 권사님을 염려했지만 오히려 권사님은 저를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로 목사가 실망하지 않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을 경험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겪어야 할 마음의 짐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그 배려의 마음은 위대한 구속사의 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배려한 요셉과 같이 성도들도 배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곁에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배려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배려는 위대한 구속사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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