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8~16)

그래서 모세는 손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았고, 나이 많은 모세의 팔이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함께 산에 올랐던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돌 위에 앉게 하고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려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무찔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는데 공헌한 사람은 앞장서 나가 싸운 여호수아와 산에서 손을 든 모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한 아론과 훌입니다. 이들이 한 일이란 기껏 모세의 손을 붙잡아 준 것입니다.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모세의 팔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고 들려질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표면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힘을 내게 하는 엔진과 같은 중요한 부품도 있겠지만, 어느 한 구석의 작은 부품도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나사 하나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자동차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엔진은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나사 하나 정도는 우습게 여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존중하면서부터 그 많은 것을 이루는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조연도 엑스트라도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왕에 배역을 맡는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풍토가 또한 그것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은 주인공에게 돌아가게끔 사회제도가 되어 있습니다. 엑스트라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무슨 상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이제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가르치셨습니다. 주인공만이 역사의 중심이라고 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목마르고 주린 자들이 앞으로 올 새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자기가 영웅이 되려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셨다면 분명히 유대인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인공이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20:28)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주인공의 길과는 정반대로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나가셨습니다. 주인공이 받는 갈채 대신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모든 가난한 자들 속에 계셨습니다. 누구나 다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 이하에 교회 안의 여러 직분을 열거하면서 서로 돕는 직분도 하나의 직분으로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병 고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와 같게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말씀하십니다.(눅16:10) 말없이 이름 없이 봉사하고 돕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집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러한 충성된 자로 하나님의 귀한 상급의 자리에도 함께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