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주는 유익함과 꿈

중년은 사람의 일생에서 중간 단계의 기간을 말한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표준전달 메뉴얼인 정신질환진단및 통계편람(DSM)은 과거에는 중년을 40~60세로 규정했지만 1994년 제4차 개정판부터는 최대 40~65세로 개정했다.

바야흐로 고령화와 함께 호모 헌드레드세대(Homo Hundred Generation)로 100세 시대인 요즈음은 그 구분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은퇴 후 몇 년 이내에 세상을 떠났던 과거 세대와는 달리 지금은 은퇴 후에도 30~40년을 더 생존하기 때문에 중년의 세대를 40~65세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중년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중년이라고 하면 ‘위기’라는 단어가 떠 올랐지만 지금은  중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나이’라고 정의한다.

즉 ‘중년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구체화시키는 흥미진진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복음전도자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냈던 첫번째 편지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실제로 고대 헬라인(그리스인)들은 행복을 정의하는데 시간과 지혜를 투자했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 단어는 행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보다는 더 형이상학적인 단어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인생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운명’이라고 한다. 또한 우주와 자연의 지배를 받고있고 초자연적인 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운명적인 삶속에서도 마땅히 해야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인 ‘사명’과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은 신앙인들의 세계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우다이모니아를 우리의 중년의 삶에 적용하여 의미를 부여한다면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의 중년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까?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배우고 수고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악기를 배운다던지 외국어를 익힌다던지 그림을 배우고 제빵사나 바리스타 자격을 얻기위해 평생교육원에 등록을 한다던지, 또한 춘천 국제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던지, 무엇이든지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고 오래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뇌의 무게가 감소하고 신장이 줄어들며 등이 굽어지는 등의 체형변화가 나타난다. 탈모가 진행되고 체모도 감소한다.  피부는 건조해지고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둔화되며 단기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년은 어떻게 보내야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나온 시간을 헤아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며 틀에 박힌 일을 반복하는지, 습관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10년, 20년 동안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해나간다면  75세까지 정의되는 신중년, YO(Young Old)세대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게 될 것이다.

또한 그 후 우리가 맞을  76~85세 OO(Old Old)세대의 멋진 날들을 보람 있게 보내고 마침내 우리가 인생 9단이라는 Oldest세대(86세부터 시작하여 100세를 향해 달려가는 세대)인들이 되어 질때 우리는 시편에서 노래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은 존재로 칭송을 받을 것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시 1:3)

모든 세대인 들의 존경과 축복을 받고 모든 세대인들과 소통하는 유연하고 멋진 100세 세대인들로 살아갈 아름다운 중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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