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2월말과 8월말에는 정년퇴직하는 분들의 이름이 신문에 난다. 평생을 교직에 바치고 물러가는 이들의 마지막 직급을 보면 대개 교수나 교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간혹 <교사>가 있다. 그 이름 석자가 내 눈에는 더 의미가 있고 무게가 있게 비쳐진다. 이분은 교사의 천직을 자각하고 교사라는 이름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다만 성실히 그 직분을 다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살아온 것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고달픈 나날의 일들을 어찌 정년이 되도록 견디어 내었겠는가?”(이오덕,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 이오덕은 “소위 출세라는 것에 정신이 가 있는 사람은 애당초 교사 노릇을 말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대학교수직에 오르고서도 평생의 학문 연구 보다는 국회의원 또는 청와대의 어떤 자리를 연연해 하고, 가르치는 자리(교사)를 출세를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스승이란 말의 의미를 묻는다면 하릴없이 먼 산만 바라봐야 하는 답이 돌아올게다.

▨… 목사의 사(師)가 스승을 의미하고 있음을 모르는 교역자도 있을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세속의 스승들 보다 더 혹독한 조건으로 출세포기뿐만 아니라 가난까지도 감내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하므로써 ‘믿음의 스승’이 가야할 ‘좁은 길’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 성결교단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 좁은 길을 긍지로 삼아 왔음을 자랑하고 싶다.

▨…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의 저자 제임스 스튜어트는 예수를 교사로 파악한 니고데모의 눈은 정확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예수의 교육방법은 사랑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예수의 가르침(교훈) 하나 하나가 그분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기에 그분의 가르침은 곧 그분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 어느 신문기자가 스승을 기리는 마음을 이렇게 썼다. “스승의 가르침은 과거완료형으로 표현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스승이었던’이라고 쓰고 싶지 않다. 언제나 ‘스승인’이라고 쓰고 싶다. 스승의 가르침은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진다.”(김중배,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 주를 따라 좁은 길에 들어선 우리교단의 스승들이 주님을 따라 영원한 현재진행형 스승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교단의 모든 문제가 스승들이 스승답지 못하여 빚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만은 삼가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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