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컨디션에서도 최선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희망 있는 사람이다. 인간 한계선상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생을 달리는 경주자와 같다. 그러나 최상의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안타까운 사람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최선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비참한 삶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된다.

윌리암 사로이얀은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 배우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정말 비참한 배우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살고 있음을 극명하게 이야기 해주는 적절한 표현이다.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 같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감독을 만나지 못한 배우와 같다. 영화의 목적을 모르고, 영화 속 흐름도 감을 못 잡고, 누가 나를 캐스팅 했는지도 모르는 비참한 배우와 같이 살다가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시대 남성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마릴린 먼로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다. 인기와 명성 그리고 부를 누렸던 화려한 배우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마음껏 소유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30대 청춘에 자신의 삶을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상에서 마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을 인생의 무대로 오려준 하나님을 만나 보지 못한 불행한 배우였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물질과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쳐도 소망이 없는 인생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감사와 행복이 마비되어 있는 불감증 환자일 뿐입니다.

1704년, 30년 전쟁 이후에도 계속 되는 구교의 탄압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던 루터교회 벤야민 슈몰크 목사는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었다. 슈몰크 목사의 교회는 유일한 통나무 움막이며, 종탑도 없는 흙벽교회였다. 동역자 2명과 36개 마을을 돌보는데 어느 날 병약한 슈몰크 목사 부부가 심방을 다녀와 보니 집이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아들 형제가 보이지 않아 잿더미를 파보니 두 아들이 껴안고 타죽어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두 아들을 품에 안고 그는 입을 벌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슈몰크 목사는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알고 있었다. 그의 악의 상황에서 나온 고백이 오늘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431장의 찬양으로 남아 있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감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였다. 엉터리 같은 삶을 산 사람도 아니고, 흥청망청 산 사람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인생이며, 심방하고 돌아온 목사님 부부의 삶이 뒤 흔들려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몰크 목사는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나의 인생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며 남아 있는 인생의 경주를 걷기 시작했다.

환율은 올라가고 주식은 떨어지고 북한은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다들 말한다. 광야 한 가운데 뜨거운 태양을 막아줄 그늘조차 만들 수 없는 빈약한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엘리야와 같은 심정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이다. 겟세마네 동산, 올리브 기름을 짜는 그 동산에서 온 세상의 최악의 상황을 다 끌어안으시고 기름을 짜듯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자. 최악의 상황, 십자가 앞에 도망가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 최선의 길로 만드신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나의 소망이며 능력이며 힘이시다.

최악의 상황인가? 지금 최선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바꾸라. 사순절과 고난주간, 부활주간 나를 위해 먼저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길로 완주하신 예수님과 함께 힘있게 걸어가리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