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도 슈사쿠는 ‘침묵’에서 페레이라 신부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와 민족의 특성을 밝혔다. “일본인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생각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 일본인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생각할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자네들이 믿고 있는 저 하나님이 마치 거미줄에 늘어진 벌레의 시체처럼 외형만 있고 피도 실체도 상실하고 있어.”(번역, 홍문혜)

▨… 페레이라는 이 일본을 밑이 없는 늪지대라고 말했다. 묘목은 거기서 뿌리가 썩어 마르는데 그리스도교라는 묘목도 이 늪지대에서 사람들이 모르게 말라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순교의 피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법칙이 세계교회사에서 확실하게 증거되고 있어도 일본에서 만큼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 이후의 그 많은 순교의 피들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 “프로테스탄트의 선교도 그 결과는 오십보백보다. 일본교회사는 1859년 성공회 선교사들의 일본 상륙을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선교 출발점으로 삼지만 150여 년이 흐른 현재 교회 수는 7,000여 곳, 신도 수는 55만여 명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마져도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릿교대학, 도시샤대학,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등 많은 기독교계 학교들이 예수의 정신을 가르쳐도 일본교회의 위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 그러나 일본의 역사, 문화 속에는 일본교회의 교회다움이 날을 세우고 있음을 그 누가 부정하랴. 군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섰던 야나이하라 타다오, 패전후 전국민참회운동을 제창했던 가가와 도요히코, 조국을 향해 망하라고 외쳤던 후지이 다케시,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희망의 그리스도를 소개한 시나 린조, 기독교의 사랑을 증거해준 미우라 아야코, 일본패망은 하나님을 업신여긴 일본인에 대한 사랑의 채찍일까를 물은 오쿠다 사다꼬 등 일본의 양심들은 일본교회를 온몸으로 지켜냈다.

▨… 이 일본교회가 다시 신앙의 봄을 꿈꾸도록 일본 규슈 유후인에 선교센터 세인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선교의 새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수고한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유후인 세인트하우스가 선교의 사명을 저버린 채 한국교회의 휴양시설화한다면 일본교회 부흥을 통한 아시아의 평화 달성은 헛꿈으로 전락할 것이다. 일본교회가 살아야 아시아의 평화는 앞당겨질 수 있다. 새 아시아의 미래엔 일본교회의 부흥이 그만큼 절실하다. 세인트하우스가 그 길을 열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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