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김상복 목사 등 새생활운동 좌담회

1960년 일어난 4.19혁명 이후 기독청년들의 주도로 진행된 새생활운동의 의미를 되짚는 좌담회가 지난 3월 6일 서울 강변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당시 새생활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 손봉호 교수(전 서울대), 이형기 교수(전 장신대)가 참석해 새생활운동의 배경과 후배 기독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명혁 목사에 따르면 새생활운동은 4.19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부패와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서울대 문리대에 재학중이던 기독청년들이 주도한 생활운동이었다.

당시 기독청년들은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양담배와 밀수품 대신 국산품을 애용하자고 설득했고, 댄스홀과 카바레, 요정을 찾아가 도덕적 해이를 비판했다. 또 관용차량의 사적 이용에 항의하며 출퇴근 시간 외에도 차량을 이용하는 국회의원들의 차를 막아서기도 했다.

10명 내외의 기독청년들이 시작한 새생활운동은 곧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 속에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양담배 사용 감소와 관용차량에 대한 제재 강화 등 실질적인 변화도 이끌어냈다.

김명혁 목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 정부가 세워졌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패하고 혼란스러웠다”며 “우리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사상과 생활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신앙적 자각에서 시작된 것이 새생활운동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형기 교수는 새생활운동을 하나님 나라의 회복운동으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새생활운동은 이 땅에 구현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독교가 역사적 사명을 감당한 것”이라며 “당시의 새생활운동은 거룩함의 회복과 정직운동이었다”고 말했다.

또 손봉호 교수는 “새생활운동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독교가 대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소수의 기독학생들이 사회변화를 이끌었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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