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역사 담은 조선내화공장 - 한국성결신문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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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역사 담은 조선내화공장
대한민국 산업 발달의 과거·현재 보여줘
[1174호] 2019년 03월 13일 (수) 14:48:01 최석호 교수 webmaster@kehcnews.co.kr

   
▲ 국가등록 문화재가 된 조선내화공장 옛 터.
공생원을 나와 다시 해양대학로에서 신인비치호텔을 지나 15분 정도 걸으면 도로 왼쪽에 맛집 ‘선경준치전문점’이 나온다. 맛집을 끼고 좁은 골목길 해안로 57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골목길 오른쪽은 담장이 높다. 조선내화 공장이다.

1938년 일제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경제수탈의 일환으로 조선내화를 설립한다. 해남 성산광산에서 원료 납석을 들여오고 생산한 완제품 내화벽돌을 실어 나르기 쉽도록 유달산 남쪽 기슭 선창가에 지었다.

1947년 당시 목포재벌 손용기가 적산으로 불하받아 조선내화를 재창립한다. 1953년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조선내화를 성옥 이훈동 회장이 인수한다. 1964년 시멘트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하고 1973년에는 포항제철을 준공하면서 내화물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는 조선내화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1986년 조선내화 광양공장을 준공하면서 조선내화 목포공장을 폐쇄한다. 1987년 광양제철 준공에 앞서 조선내화 공장을 먼저 지은 것이다. 포항제철을 준공하고도 내화물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광양제철이 들어 선 자리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휴 린턴(Hugh Linton)이 간척한 부지다. 1926년 군산   에서 태어난 휴 린턴은 목포에 복음자리를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의 손자다.

   
▲ 조선내화공장 안과 밖.
휴 린턴은 미국 해군장교로 참전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선교사 휴 린턴은 한국으로 다시 들어온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10년에 걸쳐 대대적인 간척사업을 한다. 20만 평에 달하는 새로운 땅을 만들어서 집 없는 사람과 땅 없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바로 그 자리에 광양제철소가 들어섰다.

검정고무신 신고 남도를 휘저으면서 600여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 휴 린턴은 육신의 양식도 등한히 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20만 평 간척지 위에 한국 산업의 세계화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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