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나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조기은퇴를 했다. 교회를 떠날 준비로 마음이 바쁘던 어느 날 선임 장로가 찾아왔다.

“목사님, 후임 목회자를 선정해 주고 떠나시지요.” “그건 당회원 여러분의 몫입니다.” 에둘러 사양했다. 잠시 침묵하던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사님이 그 일을 하셔야 할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에는 목사님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목사님만큼 우리 교회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목사님만큼 교단 안에 목회자들을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후임자 선정에 적임자입니다.”

논리 정연한 장로의 말은 또 다른 분의 명령처럼 들렸다. 할 수 없이 그 짐을 지기로 했다.
새로 부임한 J목사는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성실한 목회자였다, 그는 교인들을 철저히 교육하며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에 불을 지폈다. 교회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으면서 성장의 기반이 견고하게 다져졌다.

J목사가 9년을 목회하고 서울에 있는 중견 교회의 청빙을 받아 떠난 후 후임자 선정을 이번에도 내게 의뢰했다. 그렇게 해서 부임한 K목사는 겸손과 친절이 몸에 배었고 섬김이 탁월했다. 낮은 자세로 온화한 목회를 했다.

16년 전 내가 목회할 때보다 예배 출석 교인이 지금은 갑절로 불어났고 재정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전임자 J목사가 다져놓은 기반 위에 K목사는 교회부흥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G교회에 등록한 새 신자 대부분은 교파를 초월한 인근교회에서 수평 이동한 신도들이다. 그들이 G교회에 등록한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이 교회는 주인이 없는 것 같다.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누가 장로인지도 모르겠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뿐이어서 발을 붙이기가 수월하다. 교인들이 목회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사역을 최선을 다해 돕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꼭 초대교회와 같다.”

J목사와 K목사를 천거해준 일로, 원로목사인 내 주가도 높아졌다.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처럼 시의(時宜) 적절하게 담임목사님을 구해 주실까.’ 교인들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 길 가다가 눈에 띄는 돌멩이 줍듯이 두 목사를 수월하게 만났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려고 먼 길을 떠났을 때 길가 우물 둥지에서 리브가를 발견한 것과 같은 우연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우연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앞서 가서 족집게처럼 적절한 인물을 준비하셨음이 분명하다. ‘여호와 이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와 평신도들은 하나같이 단순했다.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뜻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힘썼다. 그들은 주님이 사용하시는 통로로 쓰임받기만을 원했다. 사도바울의 사역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던 것도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 배후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있어 해결사 역할을 한다.

3월 첫 주일에는 G교회에 임직식이 있다. 장로 세 분이 은퇴하고 새로 세 분 장로를 세운다. 장립 받는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여성이다. 그 지방회에선 최초로 생기는 여성장로다.  

부교역자 중에 여 목사도 있고 여 전도사도 있는 그 교회에 이번에 두 여 집사가 장로장립을 받고 나면 끌밋한 여성 지도자들이 즐비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을 것만 같다.

어느 교회에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성장로 후보 중에 한 사람은 남편이 이미 장로여서 부부장로가 탄생한다. 훗날 그 부부장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충성스런 일꾼으로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멈췄지만 29장부터는 오늘 우리가 써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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