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 목사
어느 시골 마을에 착하고 인심 좋은 부잣집의 외동딸이 시집을 가게 되어 그 집 농장의 가축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소가 의장이 되어 “여러분! 우리를 이렇게 보살펴 길러 주신 주인님의 딸이 시집을 가는데 어찌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잔칫날에 우리 중 누군가는 풍성한 잔치 상을 차리기 위해 희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두 “옳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동의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소가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의 농사를 위해 논밭을 갈아야 하고 무거운 짐도 실어 날라야 하니 나는 빠지겠습니다” 그러자 나귀가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이 가는 곳으로 어디든지 모시고 다녀야 하고 이번 혼례에도 신랑을 태우고 예식장 까지 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개가 말했습니다. “나는 도둑으로부터 주인님의 가족을 지켜야합니다”

고양이도 말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창고에 드나드는 쥐를 누가 잡겠습니까?” 닭도 이에 질세라 “나는 새벽마다 주인님을 깨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돼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돼지가 마침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의 주신 양식을 먹고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살았습니다.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그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인님께 보답하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잔칫상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래를 하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몸을 바친 돼지는 죽어서도 웃는 얼굴로 잔칫상에 올려졌다고 합니다. 

흔히 돼지를 가리켜 미련하고 더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모리 대학의 신경과학과 행동생태 심리학 부교수 로리 마리노(Lori Marino) 박사의 연구팀이 미국 NGO ‘비인간 권리 단체’(The Nonhuman Rights Project)의 지원을 받아 국제 학술지인 ‘비교 심리학’(Journal of Comparative Psy chology)에 게재한 연구 논문에는 돼지의 인지능력이 개와 침팬지, 돌고래에 못지않다고 하였습니다.

뛰어난 후각은 프랑스 요리의 최고 재료인 송로버섯을 찾을 때 활용하고, 탁월한 장기 기억력, 미로를 빠져나오는 물체 위치 파악능력, 모의 전투를 즐기는 것과 나와 다른 개체를 식별하고 다른 동료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사회성, 거울을 보고 등 뒤에 있는 음식을 찾아내는 판단력 등 3~4세 어린이에 해당하는 70~85수준의 매우 높은 지능지수(IQ)를 가졌다고 합니다. 공감능력은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였습니다.

돼지는 코와 항문에만 땀샘 있기에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어 물을 찾고 축축한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인간이 축사 청소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돼지는 체온 유지를 위해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라도 뒹굴어야 합니다. 실제로 축사가 적당한 면적이라면 용변도 한 곳에서만 보는 매우 깔끔한 동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받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베푸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은혜와 축복, 섬김을 받으려하고 특권을 누리려고만 합니다. 감사는 입술에만 담을 뿐 손과 발의 섬김과 몸으로 감당하는 헌신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자기는 드리지 않고 베풀지 않으면서 남의 것을 이용하여 자기의 생색을 내고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이 자리만 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림으로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은총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와 만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나의 가슴에는 보람과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의 해, 똑똑하고 깔끔하게 핑계 없이 헌신하는 돼지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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