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점잖은 인간은 누구나 겁쟁이자 노예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정상적인 상태이니까 말이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모두 언급할 가치조차 없어 보이는 가장 공소한 이유 때문에 생긴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 인간의 위선과 탐욕 그리고 간교함과 잔악함을 낱낱이 까발린 사람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제외한다면 누가 또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다가 인간은 어쩌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도 인간을 부끄럽게 만든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생활자’는 ‘이성적 또는 합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철저하게 조롱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죗값을 치른 구원받은 자라는 망상에 빠져 거리의 매춘부 리자에게 자신을 찾아오면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스스로 구세주가 되는 몽상에 빠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리자의 희망을 냉혹하게 짓뭉개버렸다. 인간으로는 행할 수 없는 짓이었다.

▨…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2018년 마지막 밤까지 국회에서 고함과 삿대질로 ‘지하생활자의 몽상과 오만’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을 구세주로 몽상하며 리자를 짓뭉개버리려 하는 지하생활자처럼 ‘내로남불’만 고집하고 있었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는 고전의 법칙은 눈을 씻고 보아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지방회 분할로 빚어진 교단의 갈등과 대립을 화해로 마무리짓고 또 가압류 등의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성결원 사태 수습을 두고, 성결인들이 아직은 ‘지하생활자의 몽상과 오만’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고 자위한다면, 감히 성령의 역사를 그렇게까지 욕보일 수 있느냐고 화를 내는 분이 과연 계실까. 누군가는 화를 내야한다. 성결인이라면  지하생활자의 몽상, 오만, 탐욕을 더 이상 방기해서는 안된다. 새해에는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온갖 미묘한 부분까지도 가장 잘 의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바로 그 순간에 그토록 볼썽사나운 짓거리를 하는 나”(‘지하로부터의 수기’)에게 화를 내는 성결인의 모습을 기대하면 안되는 것일까. 아니, 성령의 새 역사 앞에서 나는 지하생활자 아닌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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