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민화에서의 한 이야기를 기억해본다. 천사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한 여인을 데리고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이 여인은 천사에게 “나는 선행을 많이 했는데 왜 내가 지옥에 떨어져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그래서 천사는 그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적산한 파 한 뿌리를 찾아냈다. 결국 그녀는 천사가 내민 그 파 한 뿌리를 붙잡고 천당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러워한 지옥에 있던 많은 영혼들이 그녀의 치마폭을 붙잡고 늘어지자 그녀는 호통을 치고 발길질하여 떨궈 버렸고 파뿌리도 끊어져 결국 그녀도 지옥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아침에 아내를 위해 따뜻한 순두부찌개를 끓이려고 대파를 찾았다. 사택 모퉁이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비료포대 안의 대파는 꽁꽁 얼어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대파 같은 신앙, 브로콜리 같은 신앙, 호박잎 같은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대파는 신기할 정도로 추위에 강한 채소이다. 겨우 내내 비료포대에 있어도 생명을 유지하고, 엄동설한의 밭에서 얼어 있다가도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식물이다. 추위에 강한 식물을 말하자면 브로콜리도 빠질 수 없다.

영하의 날씨에도 어느 정도의 햇빛만 있으면 생장하는 경이로운 브로콜리, 그러나 말 그대로 어느 정도까지이다. 영하 3~4도는 견디지만 영하 7~8도 이하로 내려가면 죽어가고 오늘 날씨처럼 영하 10도가 넘어가면 그 식물로서의 생명이 끝나버린다. 추위에 강하지만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진 채소라는 의미이다.

그런가하면 호박잎은 어떠할까? 노랗고 둥근 호박열매를 맺는데 헌신한 넓적한 이파리는 참으로 귀하지만 첫 서리 내리는 날 식물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추위에 극도로 약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참 여러 가지인 것 같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네 가지 밭과 같이 말이다. 신앙이 나른해질 때 일제 강점기 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이야기가 실린 안이숙 저 ‘죽으면 죽으리라’의 책을 읽곤 한다. 정신이 버쩍 드는 책이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님께 순종하며 순교의 신앙을 지킨 이들의 모습은 엄동설한 어떠한 한파에도 견디고 살아남는 대파와 같은 신앙이라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브로콜리 신앙은 그나마 성적이 좋은 경우이다. 상추와 연약한 채소가 다 고개를 숙이며 넘어질 때에도,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날씨에도 살아남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견딜 수 없는 한계온도를 지나 한파가 몰아치면 그것도 속절없이 고개를 숙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 주님을 부인할 지라도 나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러나 결국 고난 앞에서 넘어지고 뒷걸음질했던 주의 제자들의 모습은 꼭 브로콜리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본다. 대파 같을까 브로콜리 같을까 아니면 작은 어려움과 시험에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된서리에 푹 삶아진 호박잎과 같을까?

향긋한 파 냄새가 가득한 밥상을 대하며 어느 날 “돌아가시기 전 남편이 목사님께 드리라고 했던 것”이라며 창고에서 파 한 푸대와 마늘 한 접을 건네시던 큰 마을 어느 할머니가 생각난다. 매년 늦가을이 되면 파를 푸대 채 건네던 분이다. 오늘이라도 든든하게 밥먹고 눈길 헤치며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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