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영 목사
언젠가 학교 강의를 하러 양평으로 가는 중에 우연히 길가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보았는데 그 문구를 잊을 수가 없다.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 밑에 ‘천진암 신도 일동’. 불교 사찰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건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내년에는 석가탄신일에 축하 플래카드라도 걸어야 하나?’ 그러면서 ‘주지 스님이 성탄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성탄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누가복음 1장 14절을 보면 성경은 성탄의 의미를 노래하고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영광과 평화’.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이다.

먼저 영광은 일반적으로 아래로부터 위로 높아지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첫 번째 성탄절에서 세상의 영광은 로마의 황제이거나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봉 왕이 된 헤롯, 아니면 종교적인 권세를 가진 대제사장들에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 제국의 가장 작은 식민지 나라. 그 나라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작은 고을. 그곳에서도 밀려나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한 아기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으로 내려온 것을 영광이라고 한다.

이 영광은 평화로 연결된다. ‘평화’란 무엇인가? 예수 시대는 ‘로마의 평화’ (Pax-Romana)의 시대라고 불린다. 실제로 이 시기에 로마는 전쟁이 없는 평화를 누린다. 그런데 이런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이루어진 평화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다만 ‘로마의 평화’일 뿐이었고, 주위의 다른 민족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렇게 로마가 평화를 외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고, 그 메시지가 평화였다.

예수님은 왜 하필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그 마구간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거기에는 로마군이 있었다. 어쩌면 베들레헴의 마구간은 로마가 예루살렘을 지배하기 위해 주둔했던 군대의 마구간이지 않았을까? 전쟁을 상징하는 말의 구유에 누워 있는 어린 아기의 모습.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진정한 평화는 말에 있지 않다. 전쟁을 통한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거짓 평화에 속지 말아라. 진정한 평화는 아무것도, 그 어떤 힘도 없지만, 말구유에 누워 있는 저 아기에게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지금 가진 권력이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아기 예수 앞에 무릎 꿇는 날이 성탄절이다.

여전히 높은 곳을 바라보는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더 높아져서 다른 사람을 누름으로 나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사단의 속삭임에 속지 않고, 더불어 누리는 평화의 자리로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메시지를 단지 구호가 아닌 삶으로, 살아냄으로, 영광과 평화로 이 세상에 채우는 이번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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