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교육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할까? 설교는 타고난 재능이 아닌 후천적 교육과 훈련에 의해 해결되어 지는데, 문제는 과연 교육이 어느 정도까지 이런 설교의 완성도를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최고의 목표는 완성도 높은 설교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즉 깊이 있는 설교 메시지를 추출하는 능력, 탁월한 논리적 전개 그리고 회중을 사로잡는 감동적인 전달 능력을 갖춘 설교자를 배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설교자를 양성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은 설교자들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설교자들은 두가지 타입으로 양분된다.
하나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추출하는 능력이 있으나 전달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완성된 설교문을 읽을 때에 감동과 은혜가 되지만 막상 그 설교문이 설교자의 입을 통과할 경우 그 메시지의 감동이 반감되고 회중에게 경청의 피로감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메시지의 깊이는 없으나 전달의 능력이 탁월한 경우이다. 즉 설교문을 읽을 때에는 그 평범함과 지루함에 실망하다가도 막상 그 설교문이 설교자의 입을 통과하는 순간 회중을 사로잡는 ‘능력’으로 변하는 그런 류의 설교를 말한다. 확실히 설교가 말하고 듣는 사건임을 감안한다면 ‘읽는 감동’보다는 ‘듣는 감동’을 보장하는 설교가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으로부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추출하거나 어떤 설교의 신선한 착안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의 공식에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교육을 통해서 즉각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또 시간이 지난다고 풀리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의 습득에 비해 전달의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것은 회중의 경향성, 연설로서의 설교가 지녀야 하는 감성터치, 열정과 냉정의 조화, 다양한 수사적 치장의 자유로운 활용 그리고 정확하고 맛깔나는 언어 사용 등 후천적 노력과 훈련으로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우선 자신을 냉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설교자인가? 메시지의 깊이는 있는데 전달의 능력이 떨어지는 유형인가? 메시지의 깊이는 별로인데 전달이 탁월한 설교자인가? 이상적인 설교자를 제외하면 양자는 각자의 결점을 보완해야 한다.
메시지 깊이가 괜찮으면서 회중을 재우는 설교자라면 전달의 훈련에 치중하라! 전달은 괜찮은데 메시지의 깊이가 얕은 설교자라면 묵상훈련, 본문 분석과 관찰 훈련 등을 통해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라. 그 어떤 설교자도 능력 있는 하나님 말씀을 무능한 것으로 바꿔버리는 배신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