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 딛고 유아교육·선교 앞장
44년간 류머티스로 투병 …신앙으로 극복 자녀
가정 축복 ‘감사’ … 선교사 비전 품어

“하나님은 저에게 병을 주었지만 나머지 모든 것을 채워주셨어요. 좋은 배우자, 아이들, 교회,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교만했을 저를 하나님이 붙잡아주셨어요.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기대되고 흥미롭습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늘푸른유치원을 운영 중인 이종섭 장로(안성교회·사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몸의 유연도가 떨어진다. 무려 44년 동안 싸워온 병으로 몸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관절이 아팠어요. 한때는 2년 동안 꼼짝없이 누워있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죠.”

그의 병명은 류마티스 관절염. 병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고교 전교회장, 중학교 수석입학 등 공부에 소질을 보였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통증으로 제대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미래가 밝은 나이, 꽃을 미처 피우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찾아온 병에 시달리며서 잠시 하나님게 원망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바로 잡고 밝게 웃기 시작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성가대, 주일학교, 청년회에서 봉사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칠보산 기도원 등을 다니면서 이 병은 하나님이 아니면 고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했다.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모태신앙이었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중생체험을 하게 됐어요. 그때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다짐했고, 고쳐주실 것을 믿고 치료약을 끊었어요.”

이틀만 먹지 않아도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기에 약을 중단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결단했다. 신앙의 힘인지, 이틀, 사흘이 지나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1년에 한 차례정도 통증이 있을 뿐이었다.

병에서 자유로워진 이종섭 장로는 못 다한 학업을 계속했다. 방송통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평택대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이후 그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부인 이 권사, 처남부부와 함께 유치원을 설립했다. 유치원은 신앙이 있는 교사들을 채용하고 있으며, 아침은 교사 경건회로 시작한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 매년 6월마다 ‘이름없는 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들에게 선교에 대한 생각을 끌어낸다. 이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낸 헌금은 종합사회복지관에 전달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지역을 돕도록 품성교육을 시키는 등 복음전파를 유치원의 경영 제1조건으로 삼고 있다.

이종섭 장로는 최근 선교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미 이종섭 장로 부부는 지난 해 11월 필리핀 지교회 개척을 위해 딸의 결혼 축의금 전액을 헌금한 바 있다. 또 지난 1월에는 캄보디아를 방문했고, 한 학생의 학자금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자비량 선교를 떠나고자 한다. 앞으로 유치원을 은퇴하고 1년이나 6개월을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에서 자비량 선교를 펼칠 계획이다. 그의 책상에는 벌써 ‘캄보디아이야기’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다.

아직 그의 병은 완치가 아니다. 작년에는 척추교정수술을 받으며 고관절 통증이 악화돼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갖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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