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
로고스교회 역사 21년, 안식년을 다녀온 지 14년 만에 안식월로 한 달을 구별했습니다. 서대신교회에서 로고스교회로 개명·이전하고 달려온 8년, 여름휴가도 쓰지 않고 외국 나가는 것도 극히 절제했는데 석 달 정도 쉴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안식년은 첫 주는 국내에서 남은 세 주간은 해외에서 보냅니다. 첫 주일 11시 예배는 많은 생각 끝에 100주년기념교회로 갔습니다. 주차장을 찍고 갔는데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을 안내했습니다. 안내위원으로 보이는 분께 첫 방문자라고 말씀드렸더니 유턴, 50미터 직진 후 우회전, 우회전, 80미터 직진하면 본인이 교회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거침없이 운전을 해서 꼬임 없이 도착했더니 먼저 와 계셨습니다. 지름길로 뛰셨던 겁니다. 본당에 내려가는데 만석이라고 지하 2층에서 영상 예배를 권했습니다. 본당에서 서서라도 예배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허락했습니다. 지하 3층 본당은 500석 정도로 보였는데 열다섯 석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주보에 기록된 청장년 주일 출석 7,000명과 구체적인 헌금 액수에 약간 놀랐습니다.

예배 인도는 부목사가 했고 설교자는 정한조 목사였습니다. 예배자가 되려 했는데 관찰자가 됩니다.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머금은 역사 때문인지 동산을 흐르는 엄숙함이 로고스교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예배 구성, 성도들의 걸음, 섬김도 그랬습니다.

2005년에 세워져 이렇게 급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주님께 여쭈었지만 답이 없으십니다. 메모한 아내의 조언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안식월에 보고 느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얻었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에 지인 몇 분이 출석하는데요. 지성적 설교, 교회의 민주성과 탈 권위, 건강한 공동체성을 자랑했습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찾는다면 일산에서 여기까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섬기던 교회에서 건강하지 못한 리더십에 지친 성도들이 재충전하기에 참 좋아보였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떠날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없어 보입니다. 그 교회 부흥의 비밀을 찾고자 주님께 질문을 드렸더니 오히려 질문을 내십니다. “비교적 건강한 성도들이 로고스교회를 떠나려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니?”

정한조 목사의 설교는 원고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청중과의 눈 맞춤은 인색했지만 적어도 스무 시간 이상 준비했음이 느껴질 만큼 내용이 탄탄했습니다. 문어체, 원고 중심에서도 유머는 청중을 흔들었습니다. 안식월 마치고 월 1회는 원고설교에 도전하렵니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가 주는 답답함을 넘어선 묵직함이 좋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워 신촌에서 점심을 먹고 골목길과 옛길을 따라 출신교회 만리현의 헌당예식에 참석했습니다. 헌당까지 약 13년, 총 건축비 220억 원, 보고자는 원로장로님이셨습니다. 일생을 충성하셔서 좀 쉴 만도 한데 무거운 짐 기꺼이 지신 장로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장로님 한 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였기에 더더욱 찾았는데요. 끝까지 볼 수 없어서 후배 장로께 여쭈었더니 “자기 헌신 드러날까 봐 1부 예배 드리고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정통한 소식에 의하면 수십억을 헌금했는데 정작 헌당예식 자리를 떠난 겁니다.

그런 자리를 불편해 하는 단지 섬김만 생각하는 장로입니다. 하여, 돌아오는 길 제 영성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인정의 욕구에 목말라 하지 않고, 이름을 내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 내가 세운 공을 누군가 빼앗아가도 겸손과 미소를 잃지 않고 모든 영광 주님께만 돌리고 싶습니다. 친구 장로의 겸손 익어난 헌신을 보면 목회의 동기와 수준을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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