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현 목사
아침에 분주하게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출근하는 길, 현관문을 열고 막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저를 불러 세웁니다.

“잠깐만요!”
“어~ 왜?”

아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잠깐만 있어 봐요. 흰머리가 삐쭉 튀어나왔잖아요!”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띄니, 그건 좀 뽑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면서 아예 족집게를 들고 다가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보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요. 제 머리 위쪽에 있는 흰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몸을 좀 낮추고 고개를 숙여 보라구요!”

아내의 명을 받고 그대로 순종(?)을 하니, 그제서야 아내는 제 머리에 있는 몇 가닥의 흰 머리카락을 수월하게 뽑아내었습니다.

“이젠 당신도 염색을 해야되나 보네.”

아내의 말에 그냥 씩 웃고만 말았습니다.
그 날 교회 사무실에 나와 가만히 앉아 집에서 나올 때 있었던 그 일을 이렇게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일 때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나였었는데,
오늘은 흰 머리카락 덕분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래!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내 머리에 흰 머리카락을
더 많이 생기게 하셔서
자주자주 고개를 숙이게 하시겠구나!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일 일이 줄어 든 것 같습니다.

인사를 하는 일보다는 인사를 받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고, 고개를 숙여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일보다는 고개를 들고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겁니다.

고개 숙이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랬나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고개 숙이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어떤 시인은 와이셔츠 가슴 부분에 살짝 튄 김칫국물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더니, 저는 머리에 난 흰 머리카락 덕분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아내에게 흰 머리카락을 뽑아달라고 할 때마다 겸손히 머리를 숙여야 할터이고,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고개 숙이는 연습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낮은 자세로 고개 숙여 섬기기보다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대접 받기만 좋아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머리에 나는 흰 머리카락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와 우리 성도님들 앞에서 더욱 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겠다는 너무나 당연한 다짐을 다시 한 번 해 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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