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실의 소설모음 ‘유령가족’에는 김준구라는 이름의 목사가 등장하는 ‘그해 봄’이라는 단편이 있다. 김준구 목사의 교회는 파독광부와 간호사, 유학생들이 모이는 작은교회이다. 교인들의 체류비자와 노동허가 문제 때문에 독일관청을 드나들며 싸우는 김준구 목사를 보며 파독광부 한 사람은, “알고 보니 목사님은 순 깡패시더라고요”라고 평가하였다. 이 파독광부의 한 마디에 김준구 목사의 사람됨이 압축되어 있었다.

▨… “…‘옳소, 그렇습니다!’만을 외치도록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린 줄곧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외쳐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념이었고 또한 저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교회는 옳은 일을 위해서 항상 손을 들어 주어야 하고 모든 옳지 못한 것을 보고 ‘아니오!’를 외쳐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신체제하에 있던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구체적 활동대책을 세우려는 김준구 목사의 결의 표명에 대해 이 시대의 한국교회 목사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 많은 사람들은 김준구 목사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독일교민사회를 이끄는 선봉이 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김준구 목사는 “교회를 지키면서 교회의 방법으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울 것을 천명하였다. 그는 목사라는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절대권력에 대해 ‘아니오’를 외치되 교회의 방법으로 고난의 길을 갈 것을 또한 밝혔다.

▨… 온나라가 ‘3차 남북정상회담’에 들떠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분단, 냉전 넘어 평화, 번영, 통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제거되기를 바란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남북교회가 평화의 교두보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 염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전란 중에도 교회를 지키다가 납북당한 이들이 가신 길을 따를 결의가 살아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신체제만 절대권력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칼 바르트가 지적해 주었다. “사도가 사도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 앞에서 누군가(somebody)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니었기(nobody) 때문이다”라고. 지금으로선 납북된 이들 가운데 생존해 계신 분은 없을 것이다. 그 유해를 찾을 길도 없을 것이다. 저들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분(nobody)들 아닐까. 그래서 예수의 제자 된 분들일 것이다. 젠체하는 이들의 한국교회가 저들의 희생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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