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 목사
우리 모두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한가롭게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쉼이 계속 되면 일이 그리워지고, 일상 속으로 복귀를 꿈꿉니다. 그러다가도 일터에서 일의 중압감에 눌려 있을 때는 또 다시 일 없이 쉬는 그 날을 그리워합니다. 일과 휴식,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의 건강함을 위해 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 가져야 하는 중요한 전제는 ‘일은 좋은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일이 부담이고 멍에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태초부터 열심히 일하신 분이십니다. 일을 잘 하셨고, 그 일의 결과를 좋다고 평가하셨을 뿐 아니라 기쁨으로 안식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자신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고, 사람에게 문화명령(창 1:28)을 통해 일하는 특권을 맡기셨습니다. 그 때는 아직 죄가 침투하기 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 주실 때 그 복의 내용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말씀하시며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단호히 선언했습니다. 일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기회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일은 그저 밥벌이가 아닙니다. 마지못해 겨우 하는 노동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익하고 좋은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런 좋은 일을 감당할 때 태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한 충성도 아니요, 나 자신의 성취감을 위함도 아니며 식구를 위함도 돈을 위함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가 분명할 때 일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는 권면대로 그 일을 주의 일을 하는 것처럼 하게 됩니다.

밥벌이가 성직으로 변합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알아주시기에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세속과 성직의 구별이 무너집니다. 모든 일이 성직이 됩니다. 하나님은 주께 하듯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기대하게 됩니다.(골 3:24)

주께 하듯 하는 일을 지속하면 이제 일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태도를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일에 대한 태도가 분명해지면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 일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과 일터를 세심하게 살피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다 직장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목수이셨고, 마태는 세관원, 루디아는 의류 상인, 다니엘과 느헤미야는 고위 공직자였습니다. 드보라는 재판하는 법조인이었고, 여호수아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적으로 영적인 사역에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직업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쓰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직업 영역에서 ‘주께 하듯’ 충성하는 일터의 구원도 중요시함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마도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닐까요? 최선을 다해 일한 사람이 최고의 쉼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주께서 맡기신 일이기에 즐겁고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일과 안식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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