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진정으로 지금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당신입니까?” ‘백치’(도스토예프스키)에서 므이쉬킨을 처음 본 나스타샤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이기적인 욕망, 잔혹함, 거짓으로 가득 차있는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가차없이 드러내게 하여 독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소설은 인간의 본성에 절망하도록 독자들을 윽박질렀다.

▨… 인간본성에 대한 독자들의 절망의 극대화를 위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냉혹하게도 ‘페테르브르크(러시아)의 예수’를 제시했다. 백치의 므이쉬킨이 바로 그 인물이다. 성경의 예수를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으로 파악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수의 그 완벽한 아름다움을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조롱하는 것으로 풀어나갔다. 므이쉬킨이 페테르브르크의 예수가 되기 위해서는 거짓과 허위로 자신을 감싼 자들에게 끝없이 손해보고 이용당해야만했다. 그 결과로 페테르브르크의 예수는 백치여야만 했었다.

▨… 도스토예프스키 당시의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성서속의 예수 그리스도,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이신 분이 백치로 이해되어졌던 것이다. 오늘 이 땅에서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해는 ‘백치’에서 한뼘쯤이라도 벗어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를 묻는 집회와 세미나는 계속 열리지만 그분은 세칭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여전히 왼뺨을 돌려대야 하니 백치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 우리 성결인들은 지난해에,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은혜는 삶으로 나타난다”(성결교회 95개조 개혁안)고 고백했었다. 우리의 고백에 우리 주님은 백치처럼 미소만 지으셨을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속옷까지 벗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을까. 자신에게 손톱만큼의 불이익이라도 안기면 주님의 교단에게까지도 주먹질 먹이기를 서슴치 않는 제자(?)들도 보듬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으셨을까.

▨… 이런 형편에서 우리 교단 지도자들의 믿음의 결단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조시마 장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권면이 어쩌면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죄를 떠맡고 그 책임자가 되십시오. 벗이여, 그것이 옳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에 대하여, 만인에 대하여 진정으로 그 책임자로서 처신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으로 사실이며 당신이야말로, 만인에 대해 모든 죄에 대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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