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1~9)
빛나는 대머리의 할아버지가 기저귀를 차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젖병을 쭐쭐 빠는 모습 보셨습니까? 오래 전에 본 어떤 어린이 만화 설교집에 본문(고전 3:1~4절)의 내용을 그린 늙은 아기 그림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의 파당을 이루고 ‘나 잘랐다. 우리파 당수가 최고다’라며 싸우는 모습이 바울의 눈에도 그렇거니와 우리 주님의 눈에 늙은 아기 신자로 비쳐졌던 것입니다.
동역자란 영어로 파트너(Partner)입니다. 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즉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의 파트너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과 가치가 달라지니까요. 문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으니 영광이다’라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하나님의 동역자다와라’의 의미로 말씀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앞부분의 1~7절이 고린도교회의 젖먹이 어린아이 신앙을 책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거니와…” 3절에도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예수정신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정신이 아닙니까? 좌정승 우정승을 꿈꾸는 야고보와 요한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며, 주님의 동역자의 모습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어느 지방회나 총회대의원 선출은 상당한 관심사요 불편덩어리입니다. 왜냐하면 돼봐야 별것도 아닌 그것이 인기투표 같고 실력평가 같은 모양이 돼 버려서 그렇습니다. 지방회장이었을 때 폐회예배 설교에서 총대 양보를 선언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지방회장을 총회대의원으로 보내는 것은 좋은 전통이지만 저 먼저 총대를 양보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총대자리에 연연하지 맙시다. 인사부, 심리부 자리에 연연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자칫 그런 모습이 우리 주님 눈에 젖먹이 늙은 아기 신자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내주면 감사하여 본분을 다하고, 차례가 안 오면 섭섭해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겸손의 모습을 가집시다. 자력으로(세례인 800명) 총대를 보낼 교회도 없잖습니까? 그것 때문에 지방회에 불편이 있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지방회장이 총대가 아니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되더군요. 그리고 다음 해엔 서무부원을 자청했습니다.
이참에 총회 대의원들에게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제발 선거 끝나자마자 우루루 달아나는 무책임한 어린애 짓 좀 그만 두십시오. 겨우 입후보자들 앞에서 어깨에 힘주는 것이 총대인줄 아는 늙은 아기들 같아서 말입니다.
금년 우리 지방회에서는 ‘예배 시 박사가운을 입지 말자’는 건의안을 총회에 올렸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심히 궁금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졸업사진을 찍을 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울긋불긋하게 세 줄 두른 박사가운을 입고 찍습니다. 되게 좋아합니다.
성결인 여러분! 하나님께서 언제부터 박사들에게 설교를 맡기셨습니까? 다른 나라엔 없다는데 유독 가짜박사들이 제일 많다는 우리나라 교회의 강단에만 박사들이 설교하겠다고 설치는 이유가 뭔가요. 심지어는 교회행사 사회를 보는데도 박사가운에 후두와 박사모까지… 대단한 박사님인 모양입니다. 아마 방송설교 영향일겁니다. 박사설교가 되게 멋있어 보였나 봅니다. 결국 너도 나도 함께 젖먹이 늙은 아기목사가 되고 마네요.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강단에서 세 줄을 둘러야 겨우 설교가 되는 걸까요? 평상시 예수님의 겸손을 닮자는 설교는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박사가운 문제는 우리 교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라기는 이 운동이 우리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 전체의 운동이 되고 박사가 아닌 목사만 설교하는 강단회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아기는 귀엽고 예쁩니다. 그러나 커가면서 여전히 아기이면 정신지체입니다. 귀여울 리가 없습니다. 주님 보시기에도 골칫덩어리죠. 8절 말씀에 근거해 주님이 직접 주실 상만 기대하는 하나님의 동역자 다운 동역자이고 싶습니다. 주여! 젖먹이 늙은 아기들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