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호 교수
주말을 거치며 집권여당의 대표가 새로 선출됐다.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20년 집권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정국에 만만치 않은 파고를 예고했다.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통계청장 역시 전격 경질되었다.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며 총공세를 펼치는 야당과 보수 언론을 고려할 때, 국정책임자 입장에서 뭔가 불만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인사 조치이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격언을 실감케 하는 일들이 벌어진 셈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등장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늘 이상적인 지도자를 고대하고 훌륭한 리더십을 앙망했다. 성경 역시 마찬가지다. 외적의 침입과 국권 강탈의 아픈 기억을 지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위대한 지도자를 학수고대했으며 그런 갈망을 다양한 신학적 표현으로 기록했다. 그 흔적의 하나가 ‘멜렉’과 ‘몰렉’이다.

히브리어 ‘멜렉’은 왕을 뜻하는 단어이며 ‘몰렉’은 인신공양의 대상이었던 이방의 신이었다. 현대어로는 모음과의 결합에 의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자음의 배열만으로 구성된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두 단어가 동일한 어근으로 이루어졌고,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왕을 뜻하는 ‘멜렉’과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었던 ‘몰렉’을 똑같이 서술함으로써 왕정제도를 향한 역설과 긴장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국가와 백성을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인 왕(멜렉)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리더십은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귀신(몰렉)에 불과하다는 풍자이자 저항의식의 발로였다. 이런 의식의 흐름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게까지 전달되는 예언자적 전승이 되었고, 불의한 권력자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상징하는 여과장치로 작용했다.

현대 리더십 이론 또한 양자의 차이를 정밀하게 발전시킴으로써 유사 리더십과 거짓 지도자 분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현대 리더십 이론은 공적 직위가 리더십을 충족시키는 절대조건이 아니며, 구성원들의 수용과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리더십을 권력(power), 강제력(coercion), 관리(management) 등과 구별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리더십을 거부하는 동시에 현 질서의 안정, 희구, 노력을 배격하고 더 나은 상태로의 발전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필수조건에 포함시켰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무능력, 무책임, 무관심, 무지 등으로 점철된 리더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의문이 제기되고, 리더십의 존재 가치와 정당성에 대한 핵심가치들을 고민하는 풍토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성경과 리더십 이론들이 제기하는 공통분모는 정부와 민간 기업은 물론 교단과 교회, 신학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존중과 신뢰의 부재 속에 오직 개인의 안위나 풍요에만 관심을 쏟는 지도자가 공동체 내부 성원들 전체의 피해를 양산하는 구조적 특징에는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인구급감에 따라 모든 공동체가 다음세대가 부재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

이런 시대적 기류는 직위를 내세워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지도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며, 과거 지향적이고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머문 지도자들의 시대착오적 리더십의 퇴출을 요구한다. 이들은 ‘멜렉’을 자처하지만, ‘멜렉’으로 위장한 ‘몰렉’으로서 자기의 부귀영화를 위해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오류를 반복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멜렉’과 ‘몰렉’은 명시적인 차이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나비효과의 교훈이 대변하듯, 작은 차이가 끔찍한 결과를 생성함을 기억하며 우리 교단과 교회, 신학교의 미래를 위해 리더십 선택에 더 깊은 신중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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