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순교자기념주일 홍보키로

총회 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임재성 목사)는 지난 8월 27일 교단 순교성지인 군위교회(허병국 목사)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순교지 보전과 순교정신 계승을 독려했다

군위교회는 일제가 예수재림신앙을 문제 삼아 최헌 담임목사와 오순환 여전도사, 정진근 장로, 군위교회 지교회인 성동교회의 도계택 장로, 은희천 집사, 정영식 집사 등이 체포 투옥되어 악랄한 고문에 시달린 바 있다.

군위교회가 이처럼 수난을 당한 배경에는 예수재림신앙과 일제가 금지했던 애국사상을 담은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1년 12월 14일 군위경찰서에 구금되어 6개월 동안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몸서리가 나는 심한 고문으로 인간 이하의 고생을 해야 했다. 1942년 6월에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 검사국으로 이송 형무소에 수감됐다.

1년 간 모진 옥고를 겪은 최헌 목사는 또 다시 보안법, 형법, 조선형사법 등이 적용되어 정식으로 1년 징역판결을 받아 1944년 6월까지 약 2년 5개월 이상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러한 예수재림신앙으로 인한 군위교회의 수난은 항일애국정신으로 이어졌다.

군위교회는 또 지난 1937년 첫 예배당을 건축하던 중 첫 예배처소를 철거하다가 이종익 담임목사와 노성문 집사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교회 형편이 넉넉지 못해 일꾼 대신 목사와 신자들이 직접 철거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달 뒤 성도들은 슬픔을 뒤로 하고 고인들의 흘린 피 위에 첫 예배당을 완공했다.

첫 예배당 건축 이후 군위교회는 새 예배당을 지어도 옛 건물을 보존하는 전통을 갖게 됐다. 대개는 낡은 건물을 허무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군위교회는 순직자들이 흘린 피를 기억하며 그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교회 창립 70주년에는 첫 예배당 옆에 순직기념비를 세워 살아있는 신앙교육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역사편찬위는 또 순교지 시찰 후 가진 회의에서 오는 10월 23일 교단 순교성지인 하리교회(임광호 전도사 순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또 9월 23일 순교자 기념주일 자료집을 PDF형태로 제작하여 교육국 홈페이지에 올려 사용하도록 하고 순교지 포스터를 제작하여 전국교회에 공문과 더불어 발송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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