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의 뜻 깊은 행사가 온 세계에서 있었다. 특히 개신교회들이 종교개혁 신앙을 되살려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열매는 좋은 것만 있지 않다. 나쁜 열매 곧 부작용도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회의 갈등, 분쟁, 분립이었다.

신앙고백이나 개혁지도자에 따라 교회와 교단들이 갈라섰다. 한국교회는 서양선교사 파송교단에 따라, 그리고 해방 후부터 6.25전쟁을 거치는 시국적 영향도 있어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이는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범죄였다. 심지어 온 교회가 하나 되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조차 에반젤리칼 운동과의 갈등이 있어 속칭   ‘칼과 칼’의 싸움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파/예수교파/성령교파가 생겨났다. 성경파/성서파, 통합파/합동파/연합파/일치파, 유악기파/무악기파로 갈라져 싸웠다. 게다가 세례파와 침례파도 교회 분열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세례나 침례는 개신교회에서는 성찬예식과 함께 2대 성례전 아닌가. 따라서 성찬예식도 비스듬히 누워서 받는 파와 앉아서 받는 파 등으로 나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열매들이 적지 않게 있다. 특히 해외선교사 파송은 교회수나 신자수와 비례하여 계산한다면 단연 금메달을 목에 걸만하다.

그러나 과연 성삼위 하나님의 잣대로 잰다면 한국교회들이 칭찬만 받을 교회일까. 십자가 처형 직전 예수님은 교회의 일치를 거듭 강조하시며 간곡하게 기도하셨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21,22) 이 기도를 그토록 헌신짝처럼 버려도 괜찮을까.

그러므로 어서 속히 세례와 침례로 나누어진 것부터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세례’라는 낱말에 번호를 붙이고, 난외에 ‘헬. 또는 침례’라고 각주를 붙였다. 헬라말 원어로는 침례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뜻인데 궁여지책일 뿐이다.

세례나 침례란 말 자체는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세례라고만 하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드러내는 데 이는 침례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세례가 비성경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세침례로 단일화하기를 힘주어 제안한다. 세례교회들은 세침례란 이름 아래 약례(略禮)를 베풀면 된다. 침례교회들은 세침례란 이름 아래 침례를 베풀면 된다. 세례교회에 와서 침례를 받겠다고 희망하면 강가나 호수에 나가 베풀면 된다. 침례교회 성도가 약례를 받겠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의 세례나 침례를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침례교회만이 세례는 무효라고 한다면 그것이 설득력이 있을까. 침례교회가 오히려 전도에 제한을 받지 않을까. 그래서 미국에서는 제일 큰 교단인 남침례회가 교회 이름에서 침례를 삭제하자는 의견이 최근에는 더욱 많은 교회지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때에 세례와 침례를 통합하여   ‘밥티스마’를 세침례로 번역하는 운동에 성결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성결교회는 일본과 한국에서 시작될 때에 침례를 베풀었고, 지금은 세례를 베풀기 때문이다. 충정로 3가 35번지에 있던 서울신학대학 5층교사에는 침례탕이 있었다.

세침례를 실천하는 일은 대한성서공회가 각 교단의 동의를 얻어 공인성경의 세례를 ‘세침례’라고만 번역하면 간단히 완성된다. 한국교회 모두가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사용해온 것을 왜 굳이 바꾸겠느냐는 생각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세례와 성찬은 교회들이 공통으로 실천해 오는 가장 거룩한 예식이라 선택지가 여럿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로 자기 것이 옳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논쟁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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