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귀와 명예를 돌같이 알아 기산에 숨어 살던 은자 허유는 요나라의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기겁해서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버렸다. 어찌어찌해서 숨은 허유를 찾아낸 임금이 그 지방의 수령 자리를 맡아주도록 부탁하자 귀가 더럽혀졌다고 냇물에 귀를 씻었다. 마침 소를 끌고 가던 소부는 들어서는 안될 소리를 들은 귀를 씻어 왜 냇물을 더럽히느냐고 타박하며 더 위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

▨… 은둔의 현자 소부와 허유가, 그들의 행동거지가 오늘의 시대를 사는 모든 목사들의 사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聖)과 속(俗)을, 직업적 경건과 신앙적 거룩함을 칼로 무 자르듯이 자르는 분들이라면, 특히 자신의 삶이 ‘성령의 역사’를 따르고 있다고 강조하는 분들이라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부 허유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한번쯤은 되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않는다(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를수도 있지만,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에 사로잡히지 않아야함을 이를 때 사용되어진다. 이 말에 대비되지만 회남자(淮南子)는, 사슴을 쫓는 사람은 토끼를 쳐다보지 않는다(고려하지 않는다)고 축록자불고토라는 말도 남겼다.

▨… 선인들은 대체로 은둔의 현자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 같은 속된 것에 한 눈을 팔지말도록 권면하였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일 이외의 일에는 곁눈을 주지 말도록 권면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고 말씀하셨다. 소부 허유가 은둔의 현자라면 목사들은 세속 안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떠나 살아 어느 의미에서는 은둔자인 하나님의 종들이다. 가난을 명예로 알고 살도록 부름받은 성령의 사람들이다.

▨… 하나님의 종, 성령의 사람에게 재판위원장이 무에 그리 목숨걸 자리인가. 교단을 상대로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자리인가. 성결원 운영도 하나님의 일이며 성령께 순종하는 이들이 성결원을 이끌었는데 어찌하여 총회가 고소에 나서야 할 만큼 난장판인 사태가 빚어졌는가. 목사가 소부 허유일 수야 없겠지만 예수님만 바라보았다면 그분 이외의 모든 것은 배설물처럼 여겼어야 하는 것(빌 3장) 아닌가. 성령의 사람들 가운데 일부의 일탈이 성결인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교단의 확실한 결단을 더 이상 늦춰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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