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장로
“한번 놀러오라”는 전화가 또 왔다. 은퇴 후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는 원로목사가 계신다. 50여 년 넘게 교류해 온 분이다.

고교 때, 처음 내가 다닌 교회는 가정집이었다. 신앙심 깊은 여집사님이 살고 있는 집을 교회에 바치면서 숭인성결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대로변에 있던 교회를 예배에 방해된다고 해서 좁은 골목을 낀 곳으로 옮겼다.

그 뒤 교회 이름을 바꾸고 또 한 번 교회를 이전했으나 기대만큼 부흥이 없었다. 평생을 성결교인으로 살게 한 내 신앙의 모태 교회가 반세기를 훨씬 넘는 지금에도 성장이 흡족하지 못한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청년시절, 내가 그 교회를 떠난 후 이균성 목사가 부임하였다. 교회 신축과정에서 소유권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행정적으로 뒷정리를 말끔히 한 것을 보면 일을 겁내지 않고 책임성이 강한 분이란 생각을 해 왔다.

그 후 이 목사가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여 대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번듯한 교회로 성장시킨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주안에서 그와의 인간관계가 수십 년 간 이어 온 것은 교회지도자로서의 이념과 철학이 나와 같은 점이 많아서다. 의성으로 가는 국도는 고속도로 못지 않다. 그래도 국도 주변에는 한참 달려도 초록 밭이 질펀하다.

긴 쌍계천 둑 아래에 두어 채 집이 보인다.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주변 일대는 밭이다. 옛 시골집을 적당히 손질한 집에 이 목사 내외가 살고 있다. 빨간 지붕의 작은 뾰족집이 눈에 들어온다. 기도실이었다. 평생을 주의 종으로 조용히 살아 온 체취를 느낀다. 문득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

나무 십자가를 다듬고 있던 흔적이 보인다. 껍질을 벗겨 하얀 몸을 드러낸 조금은 비뚤한 나뭇가지를 가로와 세로로 이으면 십자가가 된다. 살펴보니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사를 조여 만들었다. 벽에 걸면 보기 좋을 만한 크기의 십자가를 집에 오는 누구에게나 선물한다고 한다. 괜찮은 모양의 나무십자가는 내 집 주방과 벽에도 걸려있다.

거실 탁자위에 그 분의 활동을 말해주는 여러 상패로 기념메달 등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탁자위에 눈이 간다. 예사로 보이지 않는 크고 두툼한 책이 겹쳐 쌓여있다. 검은 표지의 무거운 책을 들쳐보니 온통 영어 글씨가 빽빽하다.

필사체의 신약 1권, 구약 2권 영문성경이다. 필기체로 써내려간 성경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어쓰기는 알파벳 하나라도 빠지면 단어 형성이 안 된다. 66권의 한글 성경을 수십 권의 대학노트에 손으로 쓴 것을 본 일이 있지만 영문성경 필사는 처음 본다.

이 목사의 사모님의 작품이라고 했다. 배영자 사모가 젊은 시절 외국 선교단체에서 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 YWCA 증경회장단 회장을 역임하는 등 여성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많다.

지금도 관련분야에서 꾸준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활동적이고 진취적·적극적인 사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영문성경을 필사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영어를 좋아하지만 성경의 깊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요.”

시골에 들어온 후 틈나는 대로 써왔다고 하지만 어림잡아 4∼5년은 걸려야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보로 여기고 복사본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이 목사 부부의 노년생활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오니 텃밭이라고 보기에는 넓은 공간에 각종 채소들이 싱싱하다. 중간 중간 꽃나무도 보인다. 마당 끝자락에는 토종닭 우리도 있다. 수수한 농촌 풍경이다. 이곳저곳에 내외분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아 있음을 느낀다. 오늘도 새날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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