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혐오와 증오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여성·성 소수자·이주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는 ‘합리적 이유’로 포장돼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여성 우월주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가 보여준 혐오는 도를 넘어섰다.

지난 10일 ‘워마드’ 사이트에 성체에 예수를 모독하는 욕설을 쓴 뒤 이를 불태우는 사진이 게시됐다. 급기야 13일에는 낙태로 인해 시신이 훼손된 태아 사진까지 등장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어쩌다가 가장 신성해야 할 종교와 생명의 영역마저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익명의 공간이라도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됐다고 하지만 익명성에 기대어 무차별적으로 혐오 감정을 분출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신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해도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가치와 공동선을 훼손한다면 동의를 얻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는 극단적인 일들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분노를 참지 못하고 특정인을 혐오하는 정서는 이미 우리 사회에 꽤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혐오가 대부분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장애인을 시혜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혐오의 대상 또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런 정도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동성애에 대한 지나친 편견도 혐오를 유발하기 쉽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지만 성 소수자를 멸시하고 혐오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인도할 수 없는지 따져볼 문제다. 성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혐오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

난민 문제도 다르지 않다. 예멘 난민 문제를 비롯해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에 대한 거부와 혐오에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낯선 땅에서 자칫 억압과 차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이주민들을 향해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배려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근거 없는 혐오는 사회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이제 무차별적 차별과 혐오가 사회적 약자들을 인권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모든 극단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공동선을 해치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부르고 갈등의 골만 더할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먼저 혐오와 증오가 넘치는 사회에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는 ‘보편적’ 인권과 ‘사랑 실천’을 추구한다. 어떤 이유로도 인종차별과 성적, 증오 등 혐오적인 정서는 반 그리스도교 적이며,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햇빛과 비를 똑같이 내리셨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태도는 명백한 사회적 폭력에 다름없다.

인도주의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중대한 잘못임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한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너’를 혐오하는 상황들은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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