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의 성격을 흔히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제사적 종교(priestic religion)와 예언자적 종교(prophetic religion)란 개념이 그것이다. 구약성서의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교회에도 그 전통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킹슬리 데이비스(Kingsley Davis)는 서구의 교회사를 제사장적 종교와 예언자적 종교의 투쟁사로 규정하기도 했었다.

▨… 서구교회사에서 제사적 종교는 제의의 형식이나 제도를 보존하는데 집중하는 성향을 나타냈었으며 예언자적 종교는 선견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진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제도의 변혁을 주장하는 경향을 보여왔었다. 이런 사실을 민감하게 살핀 한국교회는 제사적 종교의 전통과 예언자적 종교의 전통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킹슬리 데이비스의 지적이 한국교회사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 우리 성결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여도 우리 성결교회는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서 노력은 했었지만 실제는 어긋난 위치에 서 있음이 사실 아닐까. 우리 성결교회의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이 각자의 신앙을 삶 속에서 구현함에 있어서 제사장적인 역할과 예언자적 역할을 균형있게 추구하였다면 우리 성결교회의 모습이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 만약 우리 성결교회가 조금 다른 모습을 이뤘더라면 우리사회도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개신교)는 사회변혁의 선구자였었고 청교도 정신은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밑바탕이었다. 이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누구도 부정할수 없도록 밝혔던 것 아닌가.

▨… “어떤 종교인들은 종교에 귀의하기 전에는 자신이 벌레만도 못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현재 자신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믿는다.” (최인철, 프레임) 우리의 과거가 제사장적  전통에만 치우쳐 있었음이 사실이라 해서 벌레만도 못했다고 ‘과거 죽이기’에 매달린다면 그 또한 꼴불견일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적 전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교회는 교회일 수 없음만은 명심하자. 교회가 그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정신의 밑바탕이 되지 못하고도 교회라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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