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귀란 놈이 위장을 하고 한 목사를 찾아와서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질을 포기한 것, 명예를 포기한 것, 청빈생활의 본을 보인 것, 교회가 커진 것, 재정이 늘어난 것, 교회당을 멋지게 건축한 것 등. 목회 잘한 것을 말하면서 “이런 일은 당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위대한 일입니다. 당신이 최고입니다"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마음을 고무풍선처럼 부풀게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목사가 마귀의 말을 가로 막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은혜와 이 사명과 이 조건을 다른 목사에게 주었다면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부족해서 이것 밖에 못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최선을 다 할 작정입니다."
마귀는 놀라 달아나고, 그는 겸손함 속에 더 열심히 일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진정한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19).
신앙인들에게 이런 유혹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들에게 이런 유혹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조금 커진 후에, 재정이 조금 늘어난 후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난 후에, 혹 40일 금식기도라도 한 후에 어김없이 사탄이 찾아와 교만의 바람을 불어넣는데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난 후의 우리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저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고백은 평상시 많이 대우받고 대접받고 큰 자가용 타고 다니며 큰 소리치던 종의 고백은 더욱 아닙니다.
10절의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이라는 말씀을 보면 최선을 다하고 충성된 종이라야 겨우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주님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면서도 늘 부족하게 느끼는 종의 고백입니다. 마귀의 칭찬에 속지 맙시다. 주님의 칭찬은 훗날 하늘나라에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면서 우리의 고백은 이러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저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게 참으로 두렵고 걸림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번의 장기기증과 다수의 헌혈경험을 아는 분들 중에 저를 혹 사랑이 많은 목회자라거나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저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이 말씀에 취약합니다.
제겐 이 말씀이 “신장을 하나 떼어주고 또 간을 한 쪽 떼어줘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라고 메아리칩니다. 새벽에 엎드려 기도할 때면 정말 사랑의 목회자 되기를 소원하고, 주 앞에 갈 때 모든 것을 주고 가는 복된 죽음의 길(복된 죽음의 길에 대하여는 아는 분만 압니다)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과연 내가 진정한 사랑을 갖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부끄럽고 주 앞에 두렵습니다. 이럴 때 제 고백은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나마 저의 할 일도 못했습니다.”
삯군목자라는 말은 아주 기분 나쁜 말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삯군목자를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나는 과연 삯군목자는 되는가?" 최소한 삯을 받은 만큼은 해야 삯군목자라도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삯군목자도 못되고 무익한 종의 주제도 못됩니다. 온유하고 싶으나 말솜씨가 거칠고, 겸손하고 싶으나 성격마저 급하고, 열심히 하고 싶으나 마땅히 해야 할 일엔 게으른 종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주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내년까지 참으소서. 내가 두루 파고…' 라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하소서. 제발 최선으로 할 일을 한 후에 이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아니, 최선은 커녕 제발 최소한의 할 일만이라도 좀 한 후에 이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저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