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장 1~8절)

이 시조는 ‘가고파’ ‘그 집 앞’ ‘금강에 살으리랏다’ ‘동무생각(思友)’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등의 가곡 작사가이고, 애국 시인이라 불리는 이은상 씨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조입니다. 교단 총회를 앞두고 교단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 분단된 조국현실 속에서 온갖 역경에 휩싸여 있는 조국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며 읊조리던 이은상 씨의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외웠던 시라 그런지 문득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남북한의 현실이 이 시의 기원대로 꼭 성취되길 바라고, 한국교회 연합단체가, 우리 교단 지방회와 또 교회가,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고지에 올라, 새는 날 핏속에 웃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 부흥의 고지를 다시 회복하는 우리 성결교단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이 그의 생의 마지막 부분에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더욱 진지해집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딤후 4:6)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그의 생애의 마지막 때를 맞이하여 디모데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남기는 말씀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Coram Deo)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역자로 부름 받은 자의 사명과 직무 의식을 일깨우고 또 이렇게 부름 받은 자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예비하신 면류관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달려온 우리 사역자들이 그날에 누릴 영광을 일깨우면서 사용하신 단어를 보면 당시에 인기몰이를 하던 고대올림픽의 경기를 떠 올리듯 선한 싸움, 달려갈 길, 면류관등의 용어를 쓰면서 궁극적인 우리의 삶의 끝에 주실 참 영광스러운 상과 면류관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뿐만 아니라 그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 앞’이라는 ‘신전의식’을 강조하시고 성도들의 삶과 신앙을 운동경기로 비유하면서 경기자가 받을 상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9:24~25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라고 하십니다.

이렇듯 바울은 곳곳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앙의 경주를 하고 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빤히 보신다는 코람데오의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실 상, 예비하신 면류관을 한시도 잊지 않고 한 순간도 거기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7~8절을 통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존경하는 대의원 여러분, 저도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진지하게 여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면전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바울도 그랬지만 존 칼빈의 모토도 ‘코람 데오’, 즉 ‘하나님 면전에서’였습니다.

또 바울이 그렇게 강하게 붙잡았던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에 대한 기대감이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있으십니까?

당시나 지금이나 육상경기의 꽃은 마라톤인데 마라톤 경주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제일먼저 결승테이프를 끊고 우승의 월계관을 받는 사람은 생애 최고의 영광이며 국가적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죽을힘을 다하고 그토록 온갖 수고와 고비를 넘기며 모진 연습에 연습을 더하는 것은 이런 영광과 거기에 상응 하는 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우리도 삶의 태도, 삶의 경주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받을 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경기에 대하는 자세도 달라져야 합니다. 동네에서 축구 경기하는 것과 월드컵의 결승전에서 뛰는 선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월급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근무하는 사람과 원대한 꿈을 가지고 벤처사업을 하는 사람과는 일의 자세가 다릅니다. 눈빛이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영광스러운 상을 바라보고 뛰는 사람과 참가에 의의를 두는 사람이 같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상은 누가주시는 상입니까? 우리가 받을 상은 어떤 상입니까?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고 또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 하십니다. 히 11:6 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가 받을 그 상을 ‘썩지 않을 면류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상은 세월이 지나면 다 빛이 바래고, 잊혀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썩지 않을 면류관이며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입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궁창의 빛과 같이 천국에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바울의 말씀처럼 누구나 이 상을 기대하고 이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각자 달려가야 할 레인을 배당받고 뛰고 있는 하늘나라의 대표 선수들입니다. 일생이라는 단 한번, 하늘 대표선수로 저와 여러분은 부름 받았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면 다시 뒤돌아 뛸 수도 없고, 단 한번도 더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내 일생의 경주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적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들 놀 때 같이 놀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선수는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 우리의 사역을, 우리의 신앙경주를 어영부영, 얼렁뚱땅 하지 말고 인내하며, 화끈하게, 멋지게 있는 힘을 다해 하십시다.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승리의 테이프를 끊는 스데반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 응원하신 것처럼 응원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달리는 레인은 달라도, 뛰는 종목은 달라도 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하늘 대표선수며, 특히 대의원 여러분들은 우리교단의 대표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섬김과 사역에 임해야 합니다.

바울의 권고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말씀을 전파하고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우리의 지교회를 세우고 함께 성결호로 세상을 힘차게 항해합시다. 한 동안 주춤하여 고지가 멀어졌으나 우리가 세운 믿음의 목표, 고지가 저기인데 부름의 상이 있고 푯대가 앞에 있는데 예서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끝까지 선한 싸움을 하고 달려갈 길과 믿음을 지켜 그 날에 영광의 시상식에서 주님께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는 칭찬과 상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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