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교수
‘뿌리’라는 이름의 소설이 있다. 1976년 미국에서 출판된 알렉스 헤일리의 작품이다. 소설은 ‘쿤타 킨테’라는 흑인이 어떻게 노예가 되어 미국 땅을 밟았고, 또 얼마나 격정의 시절을 견디어냈는가를 감동적으로 펼쳐낸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헤일리는 그 덕에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다. 1977년 ‘뿌리’는 TV 드라마로 모습을 바꾸어 미국에서만 51%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소설의 인기와 영향력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미국 흑인의 뿌리를 추적하는 이 작품은 2016년 다시 TV 드라마로 부활하여 또다시 높은 평점과 인기를 끌며 ‘뿌리신드롬’은 여전히 강건하며 현재 진행형임을 알렸다.

이처럼 뿌리에 대한 사람의 관심은 집요하고 구체적이며, 또 끈질기다.

5월이다. 5월은 우리 성결인에게는 뿌리를 찾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이 신학적 뿌리로 삼고있는 웨슬리의 회심일이 바로 이 달에 있기 때문이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네틀턴 코트에서 모이는 모라비아 교도의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모임에 늦게 당도한 그는 뒷자리에 앉아 누군가 읽고 있던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듣게 되었다. 웨슬리는 이 낭송을 들으며 그의 생애 잊을 수 없는 신앙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중생의 체험이었고, 이 순간을 웨슬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경,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는 것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렇게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은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을 잇는 18세기 유럽 경건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웨슬리의 회심이 있던 5월 24일을 기념해 우리 교단은 여러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우선 서울신학대학교는 이 주간을 ‘성화제’라 이름 붙여 웨슬리의 회심과 선교에 대한 열정을 계승하고 있고, 교단 역시 이 주간에 총회를 소집하여 웨슬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 역시 ‘뿌리’를 지키는 우리의 숭고한 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전통은 올해도 변함 없다. 여전히 서울신대에서는 이 주간에 성화제를 실시하고, 또 이어 교단의 총회도 개최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뿌리 잇기는 명목과 외투에만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무엇보다 뿌리의 의미와 내용이 튼실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뿌리 찾기는 외형만 남은 겉껍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5월을 준비하는 성결인은 비상한 마음으로 이 주간을 곱씹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실상은 어떠한가. 어느 순간 서울신대의 성화제는 체육대회와 축제로 변질하여 웨슬리의 회심 기념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버렸고, 성총회는 세계를 우리의 교구로 삼는 거룩한 성결의 마당이 되기보다는 각종 사연과 이권으로 무장된 정치적 알력이 충돌하는 볼썽사나운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이렇게 우리의 5월은 잔인한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곧 성화의 주간이 돌아온다. 올해는 그날이 진정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날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서울신대의 성화제는 제대로 웨슬리의 회심을 기억·계승하고, 교단의 성총회는 말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모든 성결인의 소망을 담아내는 거룩한 모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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