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인을 이끌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과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1595-1682)은 정치에서는 적이었느나 학문에서는 당대의 맞수였고 그릇의 크기에서도 기울어짐이 없었다. 우암이 속병을 크게 앓은 때에 아들을 미수에게 보내어 처방을 요청하니 미수가 ‘비상 한 숟가락’이라고 써주었다. 우암의 아들이 길길이 뛰었으나 우암은 처방대로 비상을 먹었다. 우암의 속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야사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 미수가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내린 평가다. “나는 늘 말이 행동보다 앞섰다. 자꾸 떠벌리기만 했지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경전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지만, 그 말씀이 내 삶 속에 녹아들진 않았다. 말씀 따로 나 따로 각자 놀았다. 나는 이것이 부끄럽다. 지금에 와서 깊이 반성한다. 나 죽으면 이 글을 돌에다 새겨 내 무덤 앞에 묻으라. 뒷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자신을 비춰볼 수 있도록.”(정민, 죽비소리)

▨… 이반 일리치는 1970년에 ‘학교없는 사회’를 출간하면서 현대사회의 생리가 되어버린 비인간화, 물량주의, 소외, 빈부격차 등을 부추기는 데에 학교제도와 학교교육이 앞장서고 있다고 분석했었다. 그는 학교에서보다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학교는 교사를 위한 곳일 뿐 학생을 위한 곳은 아니라고 진단하기도 했었다. 교육의 탈학교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 ‘전교조’가 아무리 ‘참교육’을 부르짖어도 오늘 우리나라 실정에서 교육의 목표는 ‘인간의 인간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업목표 달성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 학교교육의 현실이고 또한 세계 모든 나라의 교육현실도 이에서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이 현실을 직시한 에버레트 라이머는 끔찍하게도 그의 저서에서 “참인간을 양성하는 학교는 죽었다”고 이미 선언했었다.(‘학교는 죽었다’)

▨… 평생을 돌아보아 얻은 미수의 깨우침이 허망함으로 다가오는 혼돈의 시대, 참교육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물어야 하는 좌절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스승의 날이 오히려 스승을 욕보이게 하는 날이 되는 이 부조리의 교육현장에서 학교경영문제까지 염려해야 하는 우리교단 서울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은 참스승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미수일까, 이반 일리치일까. 냉혹하게도 니체는 “진리를 삶에 필요한 거짓”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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