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의 많은 방 중에서 유별나게도 방문객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한 개의 방이 있다. 이 방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이 벽화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프랑스의 가톨릭교도들이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무차별 공격해서 올린 전과를 기뻐한 교황의 지시에 의해 마련되어졌다고 한다.

▨… 교회사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일컬어지는 1572년 8월 24일의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회사학자 윌리스턴 워커(W.Walker)에 의하면 정치세력과 결탁한 가톨릭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교도말살을 목표해 잔혹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파리에서만도 하루에 8,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학살당했으며 프랑스 전역에서는 그 몇 배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교황청은 “이 살육의 극악성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기뻐하였다”(워커, ‘세계기독교회사’)

▨…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을 기독교인에 의해서 저질러진 기독교인 대학살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날 하루 동안에 기독교인이 살해한 기독교인의 수가 로마제국의 존속 기간을 통틀어 로마제국이 살해한 기독교인의 숫자보다 많았다고 증언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이 증언 앞에서 가톨릭만 부끄러워해야 할까. 프로테스탄트가 져야 할 몫은 없을까.

▨… 아이러니(irony)하게도 예수께서는 가장 잘 아는(?) 자에게서 배신을 당하셨고 자신의 능력을 보고 들어 자신을 찬양하던 자들에게서 침뱉음과 조롱을 당하셨다. 부활 이후 2000년의 교회사에서도 그분의 마음을 찢어놓는 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람들(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너무 가혹할까. 부활을 교리로만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다면 이 시대의 그분의 제자들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변명할까.

▨… “네흘류도프에게는 전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생활조건에 들어갔다는 사실일 뿐 아니라, 그때부터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톨스토이)의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면서 또 한번도 죽은 적 없으면서 감히 부활을 설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단을 메다꽂으려 하며 교회정치를 휘젓는 이들을 보면 그분이라고 몸서리쳐지지 않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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