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채 목사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마4:1~11)은 당시 세 가지 가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헬라적 배경에서는 ‘떡’ 즉 물질에 대한 시험, 로마적 배경에서는 ‘천하만국과 영광’이 상징하는 권력 지향성, 유대적 배경에서는 표적을 추구하는 종교적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분에게 신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럼 사탄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여받은 권능을 활용해서 현생에서 위대한 입신양명자로 드러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입니다. 교묘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유화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公)의 사유화(私有化)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런 요구를 결연히 거부하셨습니다.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없는 능력까지도 끌어다가 자신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다하는 것’은 남용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는 것’은 교만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태만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는 것’은 윤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하나님의 능력은 주신 분의 뜻을 이루며 교회와 사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유념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다 사용하라는 유혹을 종종 받고 있습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可)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6:12)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지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그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고전9:12)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윤리는 사회 각 분야에 요구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다 쓰지 않고 내려놓는 것은 때로는 어렵습니다. 나름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면 담임목사로서 주어진 권한도 크고 마땅히 누려도 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누리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내려놓고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최근의 생태, 의료, 과학, 기술, 환경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복제, 줄기세포 연구, 유전자 조작 연구 같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해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핵이나 생화학 무기 개발 같은 비극이 자명하게 예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규제하고 한계를 긋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못할 일이 거의 없어진 현대는 더더욱 이런 윤리적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우리에게 많은 권한과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것을 남용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 공직자, 사업가, 교사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는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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